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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장서 수천권, 세미나, 낭독회 …도서관이야? 카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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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 서교동에 있는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직영 북카페 1호점. 책을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1인석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은 모두 판매되는 책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 다큐멘터리 방송작가인 김정연(41)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운영하는 카페에 간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이 곳은 출판사 사옥 1층에 마련된 북카페다.

 프리랜서라 작업실이 없는 김씨는 학구적인 분위기에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이 공간을 사무실 대용으로 쓴다. 노트북을 가져와 4~5시간 앉아서 대본을 쓰는데,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카페 한 켠에 진열한 5000여 권의 소설 및 실용서적을 보며 아이디어도 얻는다. 김씨는 “작업실은 딱딱하고, 일반 프랜차이즈 카페는 시끄러운데 이 곳은 미팅과 개인 작업이 둘 다 가능한 공간”이라고 했다.

 #2 취업 준비생인 하경진(24)씨도 출판사 북카페에 자주 간다. 공부하기도 편하지만, 무엇보다 신간 서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다. 일반 북카페에는 신간이 없고, 동네 서점에는 주로 베스트셀러가 놓여있지만 출판사가 운영하는 카페에선 한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모든 책을 볼 수 있고, 덤으로 책을 싸게 살 수 있다. 하씨는 “카페 안에 책 소개 등 프로모션을 잘 해놔 책을 사고 싶도록 만든다”고 했다.

 단행본 출판사가 직접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북카페가 늘고 있다. 문학동네, 자음과모음, 후마니타스, 창작과비평 등 출판사가 밀집한 서울 서교동·동교동 일대에 포진해 있다.

 특히 문학동네의 ‘카페콤마’와 자음과모음의 카페 ‘자음과모음’은 최근 두 달 사이에 2호점까지 냈다. 카페끼리 경쟁이 치열해 폐점과 입점이 잦은 홍익대 근방에서 제법 선방한 셈이다. 두 출판사는 앞으로 점포를 늘려나갈 계획이며 프랜차이즈 전환도 모색 중이다.

 ◆카페에서 책 산다

출판사 직영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은 수천 권의 장서 목록과 그 책을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카페콤마’ 2호점은 문을 연지 두 달 됐지만 평일에는 300여 명, 주말에는 400여 명이 찾고 있다. 한 달 순 수익은 1500만원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서적부터 고전 소설 전집까지 3500여 종을 구비했다. 특히 30~40권에 불과하던 판매대상 책이 2주 전부터 5000여 권으로 늘어나 전체 수익도 증가할 전망이다.

 모든 책은 5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그 이유는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아 반품된 책인 리퍼브 제품(refurbished product)이기 때문이다. 2호점은 하루에 40~50권의 책이 팔린다. 카페콤마 장으뜸 대표는 “책을 보기 위해 카페에 왔다가, 책을 사는 경우가 많다”며 “리퍼브 제품은 새 책이지만 어차피 폐기될 운명이라, 출판사와 독자 모두 윈윈하는 셈”이라고 했다.

 카페 ‘자음과 모음’은 김연수·백영옥 작가 등 이달의 신간 소설과 커피를 세트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과 아메리카노를 함께 사면 1만7500원에서 5500원을 깎아주는 식이다. 작가 친필 사인이 담긴 책도 비치해놓았다.

 카페 밖에는 매대를 설치해 리퍼브 제품을 팔고 있다. 이곳에서만 한 달에 300~400권이 팔린다. 자음과 모음의 임자영 과장은 “대형서점에선 신간 매대에서 밀려나 서가에 꽂힌 책들은 판매가 어렵다. 북카페에선 대형서점에서 소외된 좋은 책을 소개할 수 있고, 구하기 힘든 절판된 책도 구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서적을 한자리에서

1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카페콤마’ 2호점. 15단짜리 대형 서가에 5000여 권의 장서가 꽂혀 있다. 2 북카페 ‘정글’ 야외에서 진행 중인 디자인북 오픈 마켓. 3 ‘인문카페 창비’에서 지난달 EBS 라디오 공개방송인 천명관 작가 낭독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방영찬 PD, 천명관 작가, 최민석 작가.

출판사 성향에 따라 북카페 분위기도 달라진다. 사회과학 서적 전문 출판사인 후마니타스는 도서관 분위기의 북카페 ‘책다방’을 운영한다. 후마니타스 책 150여 종을 30% 할인해 판매하고 있으며, 다른 출판사에서 기증받은 인문·사회과학 서적 1300여 권은 열람용으로 비치했다.

 이곳 영업부 박경춘씨는 “카페와 출판사가 공간을 반씩 나눠 사용 중인데, 카페 수익만으로 건물 임대료를 낼 정도로 출판사에 이득”이라며 “사회과학 서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온다”고 했다.

 해외 디자인 서적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디자인북도 북카페 ‘정글’을 운영한다. 1층은 서점, 2·3층은 북카페다. 북카페에서는 손님들이 열람하던 책을 파손 정도에 따라 최대 50%까지 할인해 판매한다.

 전문서적을 모아놓은 이런 북카페는 책애호가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단골 고객이 많은 편이다. 대학원생이나 작가, 번역가, 디자이너 등이 공부를 하거나 세미나를 할 때 이용한다. 이 때문에 ‘책다방’은 스탠드가 있는 독서실 책상이 있고, ‘정글’은 무료로 세미나실을 빌릴 수 있다.

 ◆저자와 독자의 소통

북카페는 독자와 스킨십을 늘리는 창구도 되고 있다. 창작과비평이 운영하는 ‘인문카페 창비’는 저자와의 만남, 시낭송회, 계간지 정기구독자를 위한 이벤트 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천명관·은희경 작가 등이 독자와 만났다. 정지연 매니저는 “전에는 행사 공간을 빌리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카페를 연 뒤 행사 횟수가 2배로 늘었다”고 했다.

 출판사 직영 북카페가 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출판 시장이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종이책 시장이 점점 위축되면서 출판사가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최근 동네 소규모 서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출판사 자체가 책 유통에 있어 오프라인 통로가 되는 양상”이라며 “일반 북카페처럼 책이 독서보다 장식이 되는 않도록, 출판사 측이 다양한 문화행사를 여는 등 기획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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