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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성범죄 재발률 줄이려면 치료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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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강동우
성의학클리닉 원장

최근 강력한 성범죄 사건들이 우리 사회를 공황에 빠뜨리고 있다. 이러저러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은 찾기 힘들다. 이런 식으로는 성범죄 불길을 잡기 힘들다. 성범죄는 단계별, 위험별로 적절한 대책이 중요하다.

 강한 처벌, 신상공개, 전자발찌 등은 초범과 재범에 일부 억제효과가 있다. 그동안 성범죄 처벌은 신상공개→전자발찌 부착→화학적 거세 순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물리적 거세까지 대두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강력한 처벌을 원칙으로 한다. 한국은 지나치게 관대했다. 성범죄자의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로 나왔다. 음주가 감형이 아닌 중형 사유가 돼야 하는데 거꾸로였다.

 하지만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범죄의 심각성과 재발위험성을 평가해 이에 따른 대책이 같이 가야 한다. 이 부분이 가장 미흡하다.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사법처리의 필수요건이 돼야 한다. 먼저 두 명 이상의 전문가가 성범죄자의 성격, 충동성, 반사회적 양상을 감정 평가하고, 사법기관이 분석한다. 이 단계에서 치료 가능성을 따져 초범이라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더 강력하게 격리하고 화학적 거세를 한다. 치료할 수 있으면 적절한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해 재범률을 낮출 수 있다.

 성범죄자들에게선 조절할 수 없는 충동, 공허감, 감정적 격앙, 공격성, 분노발작, 정서불안 등 상당한 불안정성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증세에 따라 세로토닌 계열의 약제, 리튬·카바마제핀·발포릭산 등 기분조절제, 항도파민제제 등 다양한 약물을 쓴다. 이런 약을 개인에 맞게 쓰면서 심리치료와 병행하면 충동성이나 위험성을 상당부분 제어할 수 있다. 화학적 거세까지 가지 않을 수 있다.

 화학적 거세는 심각하고 재발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의 남성호르몬을 떨어뜨려 범죄를 예방하는 방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비뚤어진 성도착 패턴까지 막을 수는 없다. 성욕은 단순한 호르몬의 작용만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거세 상태에서도 강력한 심리적 충동이 나타날 수 있고, 발기가 안 되면 변태적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화학적 거세는 최후의 약물치료일 뿐 성범죄 대책의 핵심이 돼서는 안 된다. 대상 질환 범위가 좁기 때문에 성범죄를 줄이는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성범죄자를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보고 보통사람과 다를 것이라 여긴다. 물론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없는, 그래서 교화도 쉽지 않은 사이코패스도 있다. 이 경우 화학적 거세나 영구격리 등 최후의 수단을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대다수 성범죄자는 사이코패스 정도까지 가지 않는다. 아직은 정도가 심하진 않지만 더 악화될 소지가 있는 위험인물들이다. 이들을 적절히 예방·치료하는 게 잠재적 피해자를 줄이는 데 매우 효과가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심리치료다. 전문가가 1대1 상담을 하면서 성장배경과 성향 등을 털어놓게 하고 문제를 찾아야 한다. 범죄자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인간관계를 갖게 해야 한다.

 세계에서 성범죄 재발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캐나다다. 아동 성범죄자들에게 재활 및 정신 치료를 필수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거부하거나 치료를 중도 포기하면 더 감시가 엄한 교도소로 보낸다. 미국의 대부분 주에서도 성범죄자에게 최소한 2년 이상 재활·정신치료를 한다.

 성범죄 확산을 막으려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비뚤어진 성충동과 성취향 교정, 취약한 인간관계 개선과 정서적 안정을 위한 심리치료, 성충동을 조절하는 각종 약물치료, 전자발찌 등 행동치료, 그래도 안 될 때는 최후의 수단인 화학적 거세 등의 방안들이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강 동 우 성의학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