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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동영상 보니, 아들이…" 50대父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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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6일 광주에서 발생한 여고생 성폭행 사건 용의자 김모(23)씨가 18일 광주 광산경찰서 수완지구대에서 조사를 받고 유치장으로 압송되고 있다. [사진= 뉴시스]

광주광역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51)씨는 지난 14일 오후 6시쯤 담배를 사러 집을 나섰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벽에 붙어 있던 공개수배 전단에 아들(23)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나 평소 온순하기만 하던 대학생 아들은 귀갓길 여고생(16)을 성폭행한 용의자로 둔갑해 있었다. 김씨는 “전단을 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즉시 아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들은 “내가 아니다”라며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김씨는 이튿날 인터넷을 검색했다. 사건 현장 부근에서 촬영된 폐쇄회로TV(CCTV)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김씨는 아들을 자수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영상 속에서 유유히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범인이 아들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죄어오고 있었다. 경찰은 하루평균 900명을 동원하며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다. 김씨의 집은 범행 현장에서 불과 2.3㎞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생활은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하기만 했다.

 김씨가 수배 전단을 본 지 사흘 만인 16일. 김씨는 가족에게 담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집보다 대화하기 편한 곳에서 아들의 자백을 듣기 위해서였다. 식사를 마친 김씨는 아들을 따로 승용차로 불러 “아빠가 동영상과 사진을 보니 네가 확실하다”며 자수를 권했다.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 고개를 떨군 아들은 6일 밤 건물 신축 공사현장에서 여고생을 성폭행한 사실을 털어놨다.

 

김씨는 즉시 지인들에게 자수 방법을 상의했다. 한 지인은 광주광산경찰서장의 연락처를 김씨에게 알려줬다. 고민을 거듭하던 김씨는 17일 오후 8시쯤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눌렀다.

김근 광산경찰서장은 “자수하면 정상 참작이 된다”며 용기를 낼 것을 권유했다. 1시간20분 뒤 부자는 광산경찰서 수완지구대에 나타났다. 11일 동안 연인원 7000여 명의 경찰력이 동원된 여고생 성폭행 사건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김씨는 “아들을 잘못 가르친 부모가 죄인이다.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피해 회복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내(50)도 “남편의 말을 듣고 본 전단에 아들이 찍혀 있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며 “딸을 가진 부모로서 죄송할 뿐”이라며 눈물을 떨궜다.

 경찰은 18일 아들 김씨에 대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광주=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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