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경제 view&

‘강남스타일’ 경제민주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신헌철
SK미소금융재단 이사장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 아이튠스 종합 싱글차트 1위에 올랐고 전 세계 18개국 아이튠스 1위를 휩쓸었다. 전 세계가 ‘싸이홀릭’에 빠졌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대중음악의 중심부에 서 있던 아이돌 스타들의 철저한 훈련, 서구화된 멜로디, 자로 잰 듯 정확한 집단율동, 일정한 규칙과 세련된 스타일이 관중의 눈에 익숙해진 동안 변방에 있었던 싸이는 정반대의 철저한 차별성으로 자기만의 틈새시장을 정확하게 찾아내 글로벌 무대의 최고 중심부에 우뚝 선 것이다. 변방정신으로 만들어져 가장 한국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상품이 외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변방은 지역적으로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관계적으로는 비주류들의 담론 공간이지만 “변방은 창조 공간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단순히 주변으로 읽는다는 것은 극히 천박한 관점”이라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변방이야말로 혁신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누구나 변방에서 출발해 중심부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반대로 한때 ‘새로움’이란 대접을 받았던 중심부는 어느 사이 옛것이라는 변방으로 전화(轉化)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변방정신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새로운 중심부를 목표하는 것이 삶이고 존재다. 변방을 이해하고 순응하고 노력하면 중심부에 더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개교 20주년을 맞은 중국 옌볜(延邊)과기대 여름학기 강의를 위해 올해도 각국에서 많은 교수와 전문가·경영자들이 자원봉사로 참가했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면서 이곳을 찾는 이유가 있다. 중국 동북 3성이 조선인에게는 변방이었지만 많은 열혈의사가 나라 잃은 설움을 조국 광복으로 승화시키고자 꿈을 목숨으로 바꾸어 간 곳이어서다. 일제시대에 지역적·신분적으로 중심부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낯선 이국의 변방에서 조국의 미래를 찾았던 그들은 오히려 독립운동의 중심부에 들어갔던 선구자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그들의 후손은 오늘 중국 조선족 신분으로 한국 노동시장에서 땀과 눈물을 쏟고 있다. 그들은 고향에 두고 온 자녀들이 옌볜과기대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보람과 긍지로 한국에서의 생활을 참아내고 있다. 변방은 애국의 근원이며 희망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리산 뱀사골 길목인 전북 남원시 인월면의 작은 예식장은 주위 4개면 150여 다문화가정을 위한 소중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리산 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는 이제 한국인의 아내이자 며느리·엄마가 된 다문화가정 주부들과 그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교육, 문화체험을 가르치는 중요한 공동체 장소가 되었다. 동남아 12개국으로부터 한국 농촌 총각에게 시집온 젊은 신부들은 연로한 시부모를 모시고 낯선 농촌 들판에서 비지땀을 흐리며 어느덧 두세 명의 자녀를 낳고 숨가쁜 농촌살림의 대들보가 됐다. 이들은 대도시로 빠져나간 우리들 대신 들녘을 지킬 뿐 아니라 다음 세대가 끊길 판인 농촌 가정에 덩실한 아들·딸까지 낳아 우리가 졸업했던 초등학교 텅 빈 교실의 의자를 채워주고 있다. 깊은 산골짜기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변방정신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은 한국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변방은 이제 다문화 시대의 산실(産室)이 되었고 우리가 버렸던 곳을 채워주는 곳이 되었다.

 대통령선거를 100여 일 앞두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경제의 핵심은 효율과 경쟁이지만 어느 사이 정치민주화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을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국 국가 신용등급을 중국·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상향조정한 무디스는 ‘한강의 기적’ 이상의 경제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과 혁신은 지금보다 더 새로운 변방정신에서 나와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토이스토리, 삼성전자의 이코노TV, 신사임당·율곡의 오죽헌, 단종의 장릉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방에서 중심부로 옮겨간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중심부와 멀어져 있는 변방에서 제대로 보고, 듣고, 느껴야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줄기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신헌철 SK미소금융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