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에게 배워 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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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31면

지금 가장 ‘핫한’ 남자인 가수 싸이를 한 달 전 만나서 인터뷰한 건 행운이었다. 내가 썼던 기사 중에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기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중앙SUNDAY에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전화기는 불이 났고 문자메시지, e-메일이 쇄도했다. ‘싸이에 관한 모든 것’을 묻는 내용이었다. 반복되는 질문은 “싸이의 성공 비결이 뭐냐”는 것이었다. 싸이의 어떤 점이 다른 한류 스타들과 달랐던 걸까? 한류 아이돌 스타들은 철저히 훈련받고 서구화된 멜로디에 자로 잰 듯 정확한 군무를 선보이는데 왜 싸이처럼 성공하지 못한 걸까? 사실 질문에 답이 숨어 있다. 싸이는 아이돌 스타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기에 성공한 거다. 자기만의 틈새시장을 정확하게 찾아낸 게 비결이다.

영국 친구들 중에 ‘2012년의 가장 쿨한 사람’으로 싸이를 꼽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싸이는 신선한 새로운 바람이다. 대중음악은 한국이나 서구나 할 것 없이 일정한 규칙·스타일이 있고 유머 감각은 제로다. 영국·미국의 아이돌 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다른 곳에서 아이돌 그룹을 수입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싸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웃음을 선사했다.

또 중요한 건 싸이의 노래가 굉장히 한국적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K팝 스타들은 미국에서 음반을 낼 때 거의 모두가 영어 가사를 집어넣는다. 그런데 ‘강남스타일’은 다르다. 이건 한국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다 뮤직비디오의 한국적인 독특한 몸 개그까지 더해져서 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뭔가 다른 매력을 풍긴 것이다.

때로 한국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지하철역에서 우측통행 안내 포스터를 볼 때마다 “미국·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우측통행을 한다”고 하는 걸 본다(그런데 우리 영국인들은 좌측통행을 한다. 우린 뒤떨어진 후진국인 걸까?).

프랑스인들이 우측통행을 하는 건 (적어도 그 포스터에 따르면 그렇다) 미국인들이 그렇게 해서가 아니다. 프랑스인에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측통행을 한다”고 말하면 갑자기 좌측통행을 할지도 모른다. 남들과 달라지겠다는 의지와 고집이 바로 프랑스 문화를 매력적으로 만든 비결이다. 일본 역시 ‘일본다움’에 꽤나 확고하다. 난 힉스 입자에 대해 잘 모르듯 일본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하지만 세계 다른 국가의 문화에 맞추기 위해 자국 문화를 바꾸는 것을 거부하는 것, 그 차이는 이해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싸이에 관련된 또 하나의 질문은 ‘싸이는 B급 아냐?’라는 거다. 대체 어떤 음악이 A급인지 궁금할 따름이지만, 어쨌든 싸이의 음악은 조금은 뻔뻔하고 거친 구석이 있는 건 맞다. 근데 사실 우린 모두 A급과 B급 모두를 다 좋아하지 않나, 솔직히?

한국에 대한 관광 안내 책자들은 다들 최상급 A급으로 한국 문화를 포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훌륭한 판소리 공연과 멋진 민속촌을 방문해 보라는 식의 안내문구 얘기다. 하지만 조금은 비뚤고 예측불가능한 게 섞여 있으면 한국이 좀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아리랑TV를 보면 한국은 마치 나쁜 일이라곤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지상 낙원인 것 같다. 문제는 이런 비전을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국의 내 친구들이 서울에 와서 열광했던 건 고궁과 같은 관광명소가 아닌 거리의 포장마차와 홍대 인디 밴드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이 ‘글로벌’한 곳이거나 영어가 통해서가 아니라 그 정반대여서 좋아했다.

한국의 많은 관광 관련 기구와 브랜드 관련 기구들은 싸이로부터 배워야 한다. 매력적인 국가는 독특함으로 승부한다. 난 한국을 참 좋아하는데도 관광홍보물을 보면 한국의 매력이 뭔지 잘 모르겠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2년 전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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