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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샘] '수취인 불명'이 당당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한국 영화계에서 작가주의 영화는 어느 정도 가능할까. 지난 주말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여섯번째 작품 '수취인 불명' 이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2, 3일 이틀 동안 기록한 서울 관객은 고작 4천5백여명.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진주만' 과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인 '친구' 에 손님을 많이 빼앗긴 것을 감안해도 실망스런 수치다.

그런데도 제작자인 LJ필름측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다.

이승재 대표는 "그래도 1만명 정도 기대했는데…" 라며 아쉬움을 표시했을 정도다.

언론.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역대 '김기덕표' 영화 가운데 가장 주류적인 작품으로 분류됐으나 아직 그가 일반 관객과 만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위했다.

1996년 데뷔작 '악어' 이후 인간.사회의 존재 양상을 비교적 충격적인 영상에 담아왔던 김감독이지만 그가 일반인에 비교적 널리 소개된 때는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했던 '섬' 이 처음이었다.

"3년 전 '파란 대문' 개봉 당시엔 회당 20여명 정도 들었어요. 이만하면 일취월장 한 것 아닌가요. "

그래도 "서울시내 15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영화치곤 관객이 너무 적다" 고 반문하자 "향후 비디오.TV판권.외국 수출 등을 고려하면 크게 밑지는 장사" 가 아니라고 답했다.

워낙 6억원짜리 저예산영화고, 또 김감독이 그간 쌓아온 경력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국내에서 작가주의 계열의 예술영화는 관객 10만명을 한계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관객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느냐에 달려있죠. 사실 '수취인 불명' 으로 감독에 대한 외국 관계자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어요. 그만큼 감독 자신의 커리어가 쌓인 셈이지요. "

한국영화의 대형화 바람 속에서 색깔있는 소규모 영화의 빈사를 우려하는 요즘 이대표의 당당함이 반가웠다.

소재.주제의 독창성, 지구력 있는 도전정신을 갖추면 한국형 예술영화 장르도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 한국 관객이 조금씩 다양화하고, 영화 시장도 세계로 넓어졌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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