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들어 세계적인 관심 아래 ‘아시아적 가치(유교자본주의)’로 요약되던 경제 발전,그리고 97년 세계 경제를 꽁꽁 얼어붙게 했던 외환 위기.단시간에 급전직하로 추락한 아시아 국가들의 사회상을 시사 만화로 살펴볼 수 있는 ‘아시아 만화전’이 2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갤러리에서 열린다.
아직 환란(換亂)의 유령에서 완전히 풀려나지 못한 우리에게 이 전시회의 감상 포인트는 '동병상련(同病相憐)' 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인도.태국.인도네시아.일본.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 등 아시아 9개국에서 총 90여점의 작품을 출품한다. 한국의 대표선수가 '고바우 영감' 의 김성환 화백인 데서 알 수 있듯, 각국에서 내로라 하는 시사만화가들이 참가한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세종문화회관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 9개국 시사만화가 작품
주제는 '만화로 보는 세상 이야기' . 얼핏 '시사 만화' 라는 말을 풀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듯 하지만, 주로 경제성장기의 사회 변화와 IMF 위기 이후 생활상에 초점을 맞춘다. 가령 모리타 겐지(일본)의 '무(無)의 경지' 는 휴대폰의 급속한 보급으로 참선 도장에서마저 벨 소리가 울리자 일제히 호들갑을 떠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오케스트라 연주 중 휴대폰 벨이 울리자 참다못한 지휘자가 객석으로 뛰어내려가는 김성환의 '핸드폰 남발시대' 와 비슷한 맥락이다.
전파 속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반응하는 행태가 나라마다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도네시아 출신 지 엠 수다르타의 '종이 호랑이' 는 하루 아침에 '거품' 으로 낙인 찍힌 동아시아 발전모델을 찌그러진 호랑이에 비유한 만화다. 경제 위기.부정부패.담합.유착 등 호랑이의 몸 구석구석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미얀마 작가 오 피 케의 '아주 익숙해짐' 은 한술 더 뜬다. '아시아 경제 위기' 라는 풍랑에 여러 국가들이 허우적대고 있는 와중에 미얀마 국민들은 수중에서 매우 침착한 자세로 서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늘 고되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그들에게 아시아 경제 위기라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 사회.생활상 변화에 초점
풍자와 재치.해학 등의 요소를 갖춰 흔히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 이라고 불리는 시사 만화. 시사 만화라는 '그릇' 이 워낙 재미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인들의 삶이 더 궁금하다. 이 행사는 7월 6~12일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8월 6~17일에는 제주도로 옮겨 열린다. 02-2122-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