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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영화찾기]산 자를 해부하라 '아나토미'

중앙일보

입력

차가운 수술대, 귀를 자극하는 섬뜩한 기계음에 영문 모를 잠에서 깨어난 희생자. 해부실을 뜻하는 'Anatomie'란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목을 세워 몸을 내려다 본 순간 이미 날카로운 메스는 굳어버린 자신의 몸뚱이를 켜켜이 분해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슈테판 로조비츠키 감독의 독일 공포영화 '아나토미'는 세 가지 미덕을 겸비하기 위해 애썼다. 첫번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노스페라투' 등 공포영화의 효시가 된 독일 표현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최고의 의학도를 꿈꾸는 독일 전역의 수재들이 모여든 하이델베르크는 아름다운 자연과 지적 낭만이 빛나는 고도. 하지만 사건을 잉태하고 증폭시켜나가는 가장 중요한 '세트' 해부실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킬러를 바로 앞에서 대면한 듯한 철저한 두려움이 온몸을 엄습한다. 칼날을 연상시키는 푸른 기운, 피할 수 없는 금속성 중압감이 숨을 조여온다.

명망 높은 해부학 강의를 듣는다는 기쁨도 잠시, 학생들 주변에선 의문의 실종사건이 계속되고 주인공 파울라는 중세시대부터 의학발전의 미명아래 산 자에 대한 해부를 자행한 반(反)히포크라테스 단체 AAA의 실체를 발견한다.

서슴없이 살인을 자행하는 의학도 역시 대부분 단순한 성격장애로 묘사되는 할리우드의 킬러달과는 천양지차다.

학문에 대한 이상 열정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뒤틀린 애증에 번민하던 그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산채로 해부, 완벽한 인체 표본으로 만든다. 그리고 젊음, 찰나의 아름다움을 영원으로 승화시킨 자신의 작업에 스스로 만족한다.

두번째, 독일 영화의 전통을 강조한 '아나토미'는 할리우드의 감각을 수용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빠른 전개와 감각적인 연출로 팬들을 긴장시킨 영화는 공포의 대상이 확연히 드러난 후반부부터 철저하게 할리우드의 공식을 답습한다.

물론 이 부분은 '스크림'류의 할리우드 공포물에 식상한 대부분의 팬들에겐 옥의 티. 지루한 추격전, 갑자기 무능력자가 되버리는 킬러는 영화의 긴장감을 반감시킨다.

'아나토미'의 마지막 미덕은 독일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청춘 스타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 98년 설립된 독일 콜럼비아 영화사의 첫 작품인 만큼 흥행 성공을 위해 화려한 출연진에도 초점을 맞췄다.

파울라 역의 프란카 포텐테는 98년작 '롤라 런'에서 빨간 머리로 쉴새 없이 질주하는 롤라역을 맡아 단숨에 월드 스타로 급부상한 배우. 조각 같은 외모의 의대생 하인역을 맡은 벤노 퓨어만 역시 수년간 독일 영화배우 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스타다.

그레첸 역의 안나 루스는 TV, 영화는 물론 가수로도 활동하는 팔방미인으로 '아나토미'의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했으며, 필 역의 홀거 슈페칸은 캘빈 클라인 등의 모델과 TV프로 사회자로 사랑 받고 있는 배우다.

각본, 감독을 맡은 슈테판 루조비츠키는 96년작 '템포'로 데뷔한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록 그룹 스콜피온스, 노 머시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2000년 '아나토미'의 성공으로 독일 영화계에서 더욱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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