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오르며 부녀지간 사랑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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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으로 보면 이 책은 일종의 논픽션 '고산(高山) 등정기' 다. 아버지와 딸이 역경을 극복하고 해발 4천2백m의 그랜드 티턴과 7천m에 육박하는 아콩강과를 함께 오르는 과정을 리얼하면서도 잔잔하게 써내려간 것.

하지만 등반에 얽힌 다큐멘터리식 정보보다 더 의미있는 부분은 아버지와 딸 사이에 생겨나는 틈새를 등반이란 공동의 목표를 통해 메워나가는 대목이다.

중년의 나이에 버거울 수밖에 없는 등반을 배워 산을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좋은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과장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등반을 매개로 중년 남자의 내면을 그린 '아버지의 이야기' 이자 '부녀 재발견' 기록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모티브의 책으로 아버지가 아들과 딸에게 삶의 진실을 교훈적으로 가르치는 제임스 도드슨의 『마지막 라운드』(아침나라) 와 『성실한 여행자』(범우사) 가 있다.

저자는 평소 모험과 스릴을 즐기며 야외 레저활동에 관한 기사를 주로 써온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 저널리스트. 바쁜 생활로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두 딸의 기저귀를 갈거나 머리를 빗겨주고 딸들을 위해 소녀 소프트볼팀을 맡아 가르치기도 하는 자상한 아빠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젊은 부부와 자식간의 따뜻한 사랑이 가득하다.

하지만 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누구나 그렇듯 부녀 사이는 어느새 서먹해졌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저자가 50세 생일을 맞아 고산 등반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당시 15살이던 큰 딸이 동참하면서 함께 두 개의 산을 오르는 부분이다.

물론 가볍게 걸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암벽등반을 포함해 저산소증과 폐와 뇌에 물이 차는 수종(水腫) 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험난한 등정이다.

안데스산맥에 있는 아콩강과는 남미에서 가장 높은 산. 이 산의 5천7백m 부근 고비에서 "나는 상당히 힘들구나. 너는 잘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정상까진 안될 것 같다" 며 딸에게만은 숨기고 싶은 아버지의 한계와 속내를, 위엄은 갖췄으면서도 진솔하게 고백하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물론 처음 4천2백m의 그랜드 티턴을 오를 때만 해도 노먼은 의연하게 딸을 보호하며 이끌어주던 모습이었다. "자기 박자를 찾아서 그것을 유지하기만 하면 돼. 춤을 추듯이 말이야" 라고 딸을 격려하면서….

스페인 속담에 운이 좋은 남자는 첫 아이로 딸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운이 더 좋은 남자는 그 딸과 함께 더 좋은 아버지이자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사람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듯이, 노먼은 등반가로선 최고라고 할 수 없지만, 아버지로서는 화려하게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번역과정에 등반에 대한 전문용어가 많아 이를 부록으로라도 풀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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