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9만원” … 온라인 카드 호객 극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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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직장인을 위한 신용카드를 추천해주세요.’ 기자가 한 인터넷 생활정보 카페에 글을 올린 건 7일 오후. 3시간 만에 쪽지 3통이 도착했다. 2통은 “연회비도 면제해주고 현금도 얹어주겠다”며 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쪽지였다. 신한·KB국민·현대카드 발급이 가능하다는 박모(45)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현대카드의 플래티넘 카드를 권하며 “현금 9만원을 준다. 연회비 7만원을 제하고 2만원은 본인이 가지면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e-메일만으로도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며 양식을 하나 보내왔다. 카드사의 공식 신청 양식이 아니라 이름·주민 번호·주소 같은 개인정보와 계좌번호 등만 기입하게끔 한 임의 양식이었다. “만나지 않으면 서명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박씨는 “우리가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답했다.

 대필은 물론 대리 서명까지 서슴지 않는 온라인 불법 신용카드 모집이 활개를 치고 있다. 현금 등 사은품을 미끼로 e-메일이나 팩스를 통해 신용카드 신청을 받는 식이다. 신청 방식도, 내건 사은품도 모두 불법이다.

 호객 행위를 일삼는 이들은 ‘카드 모집인’이다. 보험 설계사처럼 유치 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이들이 카드 유치 1건당 받는 모집수당은 보통 3만~4만원. 하지만 소비자가 카드를 쓰는 실적에 따라 추가 수당이 더해져 카드 한 장에서 보통 10만~15만원의 수당이 나온다는 게 카드 모집인들의 설명이다. 일부 카드 모집인은 자신의 수당을 올리기 위해 과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삼성카드 모집인 박모(40·여)씨는 “4개월 동안 월 50만원 이상은 쓰셔야 연회비를 면제해준다”고 말했다. 5월부터 카드사들이 유치 건수보다 이용 실적에 따라 모집인 수당을 조정하기 시작한 영향이다.

 모집인들은 이 중 일정 금액을 떼어 소비자에게 준다. 문제는 소비자 대신 신청서를 써주는 것은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는 범죄라는 점이다. 카드 연회비의 10%를 초과하는 사은품을 제공하는 것 역시 불법이다.

 하지만 현금과 상품권, 짝퉁 가방 등을 내건 유혹에 넘어가는 소비자가 한둘이 아니다. 한 카드 모집인은 “내 몫으로 나오는 수당을 좀 떼어주긴 하지만 이 편이 발품을 덜 팔아 좋다”며 “고객들은 사은품을 많이 받으니 서로 좋다”고 말했다.

 이렇게 불법 영업이 판을 치는데 신용카드사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박씨는 현대카드 소속 설계사가 아니다 ”며 “이런 가짜 신청 양식이 돌아다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다. 삼성카드는 “최대한 대필 서류를 가려내려고 하지만 이는 전체 신청서의 극히 일부” 라고 해명했다. 모집인이 자신의 수당에서 떼어 임의로 사례비를 제공하는 것도 적발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신한카드나 KB국민카드 등 다른 카드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금융감독원 김영기 상호여전감독국장은 “온라인을 통한 카드 신청은 신용카드사 홈페이지에서만 받아야 한다”며 “신청 방식이 불법인 데다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온라인 영업에 대한 감독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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