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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조미료·승차권 … 간판 속의 근대사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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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고: 연초 밀경작은 일가의 파산/전매령 준수는 국민의 의무/잎담배 한대는 일생의 수치.’

 1910년대 전주지방전매국이 마을 어귀마다 붙였던 간판 문구다. 일제는 1910년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전매국을 설치하면서, 개인의 담배 경작과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반공표어가 동네 전봇대를 차지한다. ‘우리부락 간첩 있다/다시 한번 살펴보자’ 등이 적혔다.

 간판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10월 7일까지 서울 마포구 근현대디자인박물관 갤러리모디움에서 열리는 ‘간판역사 100년 전-간판, 눈뜨다’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읽는 흥미로운 시도다. 일본어와 한글이 병기된 1910년대의 간판부터 현재 도심을 장식한 세련된 디자인의 간판까지, 실물간판 150여 점이 소개된다.

 개화기 간판들은 주로 나무판이나 천에 가게 이름이나 상품명을 붓글씨로 적은 것이었다. 금속 표면에 유약을 바른 법랑간판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술·담배·은단 등 기호품 광고 간판이 가게 입구에 걸렸다.

특히 많이 남아 있는 게 석유광고 간판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이후 1884년부터 미국에서 석유가 대량으로 수입되기 시작해 1900년대 석유는 광목류와 함께 국내 수입품 1~2위를 다퉜다. 미국 스탠다드사의 승리표 석유, 런던표 쉘 석유 등이 치열한 광고전을 펼쳤다.

 광복 직후에는 ‘일본식 간판 일소운동’이 벌어졌다. 상인들은 일본어로 적힌 간판을 모두 떼고, 한국어 간판으로 바꿔 달아야 했다.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철제·목제·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간판이 등장했다.

 이번 전시에는 학교 앞 문방구에 걸려 있던 빨간 우표판매 간판, 시내버스 승차권판매소 간판 등 추억의 60~80년대 간판들이 소개된다.

60년대는 동아화성공업(현재 대상)의 미원과 제일제당(현재 CJ)의 미풍이 ‘조미료 전쟁’을 벌였던 시기였다. 미풍은 미원에 맞서 당대 최고 코미디언 구봉서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70~80년대 골목골목에 붙어있던 삼천리연탄·인동연탄·동성연탄·제일연탄 등 연탄회사들의 전화번호 안내판도 나왔다.

 세련된 디자인과 색감을 가진 요즘 간판도 빠질 수 없다.

선문대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서울 홍익대 앞·압구정·인사동 등을 돌며 독특한 ‘작품’을 찾아냈다. 또 젊은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디자인한 전국 10대 도시 한글간판도 전시된다. 박암종 관장은 “간판은 시대의 생활상이 반영된 디자인 결과물이다. 이제 간판은 공공디자인의 핵심요소”라고 말했다. 관람료 3000원. 070-7010-43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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