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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추리로 풀어본 부석사 무량수전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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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부석사 무량수전의 처마곡선과 배흘림기둥은 한국 전통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중앙포토]

배흘림기둥의 고백
서현 지음, 효형출판
288쪽, 1만7000원

건축교양서인데, 추리소설처럼 읽힌다. 이를테면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이렇고 저런 상황으로 볼 때, 저렇고 이런 사건이라 결론을 내린다. 이때, 누군가 의문을 제기한다. “뭔가 이상해. 그렇게 단순한 사건일 리 없어.” 피해자를 둘러싼 정황을 종합하고 탐문수사를 계속한 결과, 흩어진 퍼즐 같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유가 좀 과격했다. 저자가 의문을 품은 대상은 전통건축물이다.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예로 들어보자. 이 앞에 선 사람들은 앞다퉈 ‘발레리나 같은 추녀와 역도선수 같은 배흘림기둥’을 칭송한다. 배경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우아한 처마곡선은 민족이 지닌 미의식의 발현이라 한다. 저자는 궁금해진다. “저 처마와 추녀의 곡선이 없다면, 건물은 훨씬 더 만들기 쉽고 구조적으로도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집을 지은 목수들은 단지 시각적 미의식의 과시를 위해 저런 어려움을 무릅썼을까?”

 건축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심심해서, 혹은 아름다운 조형물을 소유하고 싶어 집을 짓지는 않는다. 집을 지으려 허허벌판에 선 그 옛날 목수들에게는 나무라는 재료와 자연환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조건’이 있었다. 한국 전통가옥이 지닌 아름다움의 정수로 불리는 처마와 추녀. 이 조건 하에서 처마와 추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비바람으로부터 나무기둥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기둥이 썩으면 집이 쓰러진다. 기둥의 발목 부분이 물에 젖지 않게 하려는 구조적 필요성 때문에 처마는 높이 더 높이 뻗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위 아래 부분이 갸름하고 중간이 볼록해 독특한 미감을 자랑하는 배흘림기둥에 대해서도 의심해본다. 지금까지 배흘림기둥의 존재이유에 대한 설명은 두께가 일정한 기둥의 경우 중간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보정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진짜 비밀이 나무기둥 아래에 받쳐 놓은 돌인 ‘주초(柱礎)’에 있지 않을까 추리한다. 나무기둥 너비에 맞는 돌을 찾아내 다듬는 것보단 돌 크기에 맞춰 나무 밑둥을 갸름하게 깎는 쪽이 목수의 입장에서 더 쉬웠을 거라는 판단이다. 결국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전통건축물은 목수들이 다양한 제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우아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종이컵은 왜 동그란가’라는 뜬금없는 질문에서 시작해,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고, 기와를 덮고, 문을 내 집을 완성하는 과정까지 치밀하게 끌어가는 구성이 탁월하다.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사건의 얼개가 맞춰지는 추리소설처럼, 이 책 역시 온전히 완성된 한 채의 집을 만나고 싶은 욕심에 책장을 덮기 어렵다. 올해 4월 발간됐던『사라진 건축의 그림자』의 개정판으로,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그림과 한옥의 각종 부재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덕분에 용마루가 뭔지, 맞배지붕이 뭔지 전혀 모르는 건축 아마추어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전통건축물을 보는 사람들이 “배우고 외웠던 자연미와 곡선미뿐 아니라 절실했던 목수의 모습까지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충실한 독자라면 배흘림기둥과 다시 마주쳤을 때,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민 끝에 나무 기둥의 아랫부분을 깎아 주초에 얹어 놓고, “해 보니 나름 괜찮네” 혼잣말 하는 목수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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