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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형 집행해라 아예 잘라라 과연 잘하는 일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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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얼마 전 번역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판정했다. 온당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인터넷에 들어가면 공짜 포르노가 넘치는 판에 윤리위 판정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안타깝다. 나도 몇 년 전 간행물윤리위에서 심의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 수입 신청이 들어온 외국 잡지·만화·소설을 살피는 일이었는데, 80% 이상이 일본 만화·소설이었고 대부분 동성애가 소재였다. 성애(性愛)물 시장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나치게 상세한 묘사로 일관한 책은 당연히 유해간행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전방위 예술가 장 콕토(1889~1963)의 데생집 앞에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이였던 장 콕토가 성행위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집이었는데, 이마저 포르노물이라고 판정하기는 무리였다. 동료 심의위원들과 토론 끝에 비닐커버를 씌워 성인들은 구입할 수 있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끔찍한 어린이 성폭행 사건으로 사회가 충격·분노에 빠지면서 강경한 주장이 속출하고 있어 걱정이다. 사형을 당장 집행하자, 형량을 높이자, 고환을 자르자고 한다. 당국의 대책도 어디선가 본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사형제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지만, 지금 여론에 편승해 죽이고 높이고 자르는 것은 반대다. 다른 관점, 다른 의견도 말을 꺼낼 분위기가 됐을 때 본격적으로 논의할 일이라고 본다.

 포르노물 단속도 무조건 모든 하수구를 틀어막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성매매방지법이 과연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었는지 돌아보라. 성(性)이 인간의 정신과 몸 속에 얼마나 뿌리를 깊이 내린 존재인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에는 기껏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성인잡지가 하드코어의 극한이었다. 장 콕토의 애인이었던 레몽 라디게(1903~1923)의 『육체의 악마』만 읽어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세월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야한 사진·동영상이 앞으로도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근본주의적·원리주의적 해결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혹시 우리는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미국 경제학자 해롤드 뎀세츠가 지적한 니르바나 오류(Nirvana fallacy)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능한 현실과 실현 불가능한 절대세계를 혼동하는 오류 말이다. 인간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포르노라면 남에게 신체·정신·물질적 피해를 끼치거나 미성년자·장애인 등 약자를 대상으로 한 것들을 골라 벌주는 게 옳다. 장 콕토의 데생을 보면 동성애자가 되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읽은 여성들이 수갑과 채찍을 들고 잘생긴 남성을 찾아갈 것이라고 믿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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