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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 않는 사형제 대신 종신형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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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사무실에서 만난 목영준 헌법재판관은 사형제 폐지 논란 등 각종 현안에 대해 명쾌한 의견을 쏟아냈다. [오종택 기자]

“저 역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볼 때마다 사형을 시켜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시키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법률은 있지만 실행이 안 되는 경우 오히려 국가 법질서를 불신하고 희화화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14일 퇴임하는 목영준(58) 헌법재판관은 실효성 없는 사형제는 폐지하는 게 옳다는 의견을 밝혔다. 3일 사무실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는 목 재판관을 만나 우리 사회의 현안과 헌재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다음은 목 재판관과의 일문일답.

 -최근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형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사형제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사형제의 존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반인륜적 흉악범을 보면 이런 자식은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도 흉악범죄가 날 때마다 ‘그런 사람들을 왜 사형 안 시키고 국가가 먹여살리느냐’며 얼굴을 붉힌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돌아보자. 첫째, 우리 헌법 규정은 절대적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게 돼 있다. 둘째, 사형을 선고하더라도 극악무도한 놈을 바로 죽이는 게 아니라 최소 3년 뒤에 한다. 범죄를 저지를 때는 악마 같던 놈들도 2심 정도 되면 눈물을 뚝뚝 흘린다. 또 98년 이후 사형 집행을 못하고 있다. 형을 확정했는데 집행을 안 하는 거다.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다. 이런 식으로 되면 국민이 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긴다. 사형은 외포심을 줘서 범죄를 억제하자는 목적이 크다. 그런데 사형수들이 감옥에서 자연사하게 생겼다. 현실적으로 전 세계에서 5개국에서만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실효성 없는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절대적 감형과 가석방이 없는 종신형제를 대안으로 도입할 수 있다. 유기징역 상한을 폐지해 사실상 감옥에서 죽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헌재가 설립된 지 24년이 됐다. 그동안 헌재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사회적 갈등을 푸는 데 정치가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헌재가 해줬다. 헌재가 없었다면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도가 폐지됐을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바뀌었을까 싶다. 헌재가 생기기 전 40년 동안 위헌 결정이 4건밖에 없었지만 헌재가 생긴 뒤 24년 동안 670건의 위헌 결정이 났다.”

 -6년간 많은 결정을 내렸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BBK 특검법 사건이다. 사건 자체도 중요했지만 헌재 역사상 가장 짧은 13일 만에 결정을 했다. 당시 연구관들과 열심히 검토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 지금도 욕을 많이 먹는 재외국민 선거권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안 내는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준다고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해외에 사는 우리 국민을 포용하고 국제 조류에 맞춘다는 취지에서 결정을 내렸다.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 퇴직금을 못 받는 제한에 대한 위헌 결정도 생각난다. 이 결정으로 헌법재판소장이 몽골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을 했는데.

 “인터넷 댓글 같은 경우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 기구에서 규제해야 한다. 영화·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다만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 훼손에 대해 좀 더 엄정한 처벌을 해야 한다. 명예 훼손에 대해 국민과 법원, 검찰도 너무 관대하다. 위헌 결정을 낸 가장 큰 이유는 실효성이다. 실명제를 해서 통계적으로 악성 댓글이 전혀 줄지 않았다.”

 -소수 의견을 많이 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을 것 같다.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법률로 해야 하는데 시행령, 대통령령, 고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헌법 원칙에 안 맞다고 판단되면 일관되게 위헌 의견을 썼다. 헌법 가치 중에 최고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런 관점에서 간통, 낙태 같은 문제에 대해 위헌 의견을 많이 냈던 것 같다.”

 -국제중재에 관한 책을 두 권 썼고 하버드대 석사 논문도 그와 관련된 것이다. 왜 국제중재에 관심을 갖게 됐나.

 “이번에 삼성-애플 소송에서 봤잖나. 어느 나라든지 기업은 다른 나라에서 재판하기 싫어한다. 한국에선 삼성이 이긴 것처럼 나오고 미국에선 애플이 이긴 것처럼 나오지 않나. 국제중재란 그렇게 각 나라에서 따로 재판하지 말고 당사자끼리 합의해 국제적인 전문가들이 결정하자는 거다. 동네에 사는 배심원들이 디자인에 대해 뭘 아느냐.”

 -6공화국 헌법이 개정된 지 25년이 됐다. 그동안 사회가 엄청나게 변했는데 이를 헌법이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개헌에 대한 생각은.

 “미국 헌법은 1788년에 만들어졌다. 비행기도 없을 때다. 지금 우주선이 날아다니는데 개정을 안 한다. 미국도 1788년 헌법과 1791년 수정헌법으로 다 우려먹고 있다. 현재 헌법은 개인 권리에 관해 아주 잘 규정돼 있다. 통치 구조 개편은 필요하면 수정헌법에 넣으면 된다. 국가의 동일성,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헌법이 자주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에서 헌재까지 요직을 거치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퇴임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10월까지는 여행 등 빡빡하게 일정을 짜놨다. 일단 쉬면서 교양도서를 많이 읽으려고 한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최근 다시 읽었는데 예전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변증법을 좋아하는데 지고지순의 원칙은 없다는 게 내 소신이다. 반대 논리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이게 개혁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만난 사람=정철근 사회2부장 정리=김기환 기자

◆목영준 헌법재판관=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인 1977년 제19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판사로 임관돼 대법원 초대 공보관과 법원행정처 차장, 기조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대법원 공보관 시절 법원 판결문을 기자들에게 명쾌하게 설명하기로 유명했다. 술을 전혀 못하지만 재치 있는 입담과 논리로 어느 자리에서나 좌중을 주도한다. 법원행정처에 있을 때 로스쿨제와 배심제 도입 등 사법 개혁 작업을 주도했다. 2006년 여야 합의 케이스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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