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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안 하는 기술 개발 … 세계가 찾게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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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NK 박윤소 회장이 생산라인에서 수출을 앞둔 선박용 물 정화시스템을 살피고 있다. 박 회장이 이끄는 NK는 선박용 소화기 세계시장에서 80%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대표적 기술 강소기업이다. [부산=송봉근 기자]

선박용 소화장치 세계 점유율 1위(38%), 압축고압가스 저장용기 국내 점유율 1위(50%), 특허 및 실용신안 55건, 2007년 1억 달러 수출탑 수상….

 이런 중견기업이 있다. 부산의 ‘NK’다. 스스로 수십 건의 기술 관련 상을 받은 박윤소(71) 회장이 일군 기업이다.

 박 회장은 “공대에 가면 취직이 잘된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한양대 공대에 갔다. 어려운 시절이라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었고, 장학금 혜택이 있는 학군사관후보생(ROTC)이 됐다.

 1967년 미국이 ROTC 중에 뽑아 보내주는 군사 유학을 갔다. 우연히 들른 미국 수퍼마켓에서 작은 신발 한 켤레를 발견했다. 슬리퍼에는 ‘Made in Korea’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박 회장은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름도 없는 회사가 이 조그마한 물건으로 한국을 알리다니. 이게 애국이다. 나도 이런 사업체를 일으키겠다’.

 군복무를 마치고 72년 현대중공업에 들어갔다가 80년 ‘남양금속공업’을 창업했다. 작은 주물공장 옆 한 귀퉁이를 빌려 직원 30명과 함께 시작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타고난 성실성으로 8년간의 회사생활에서 인정받은 덕에 몇몇 선박용 기자재를 납품할 수 있게 됐다.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가는 볼트를 납품하면서 실력을 평가받아 회사가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85년 위기가 찾아왔다. 영업 때문에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아침 눈을 뜨니 손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거래처와 친해지려고 매일 술을 마신 게 화근이었다. 3년간 양·한방 가릴 것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이때 그는 ‘없는 기술을 개발해 내가 영업하려고 누군가를 찾아가는 회사가 아닌, 나를 찾아오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국내 업체는 도전도 못하던 고압가스 용기 국산화와 선박용 소화장치 개발에 매달렸다. 선박용 소화장치란 단순한 소화기가 아니라 선박 내부에서 화재 기미가 보일 때 미리 화재를 막아주는 시스템이다. 박 회장은 “전부 수입에 의지하던 것들”이라며 “당장 수익성이 없어도 이 기술이 있으면 회사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 자신이 전문서적을 뒤져가며 직원들과 함께 수개월간 밤을 새웠다. 결국 개발에 성공해 국제해사기구(IMO) 인증까지 얻었다. 선박의 사이즈 등 각종 수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소화장치 설계가 되는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했다. 결국 선박 소화장치 세계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현재는 선박 소화장치 생산물량의 80%가량을 미국, 일본, 독일, 스웨덴 등 수십 개 국가에 수출한다.

 이름을 NK로 바꾸고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조선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며 NK도 매출이 떨어졌다. NK는 이때 또 다른 성장동력을 찾아 나섰다. 선박평형수처리(BWT) 시스템 개발에 나선 것. 화물이 없을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채우는 물을 다시 바다에 버리기 전에 처리하는 설비다. NK는 지난해부터 이 설비를 생산하고 있다.

 박 회장은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88년 당시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사원 임대주택을 지었다. 매달 가불을 하는 직원 집에 찾아갔다가 동네 수십 가구가 하나의 화장실을 쓰는 현실을 보곤 “나만 좋은 데서 자면 뭐하나”란 생각에 사원주택을 지었다.

 박 회장 스스로 중기를 거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누구보다도 중견기업의 애로를 잘 알았다. 그는 “중견기업 오너가 마음껏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자금과 세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그래야 수백 년 이어지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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