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벼랑에 선 지방병원, 국가의료시스템 위협한다④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신종인플루엔자가 창궐했을 때 전면에 나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 건 중소병원이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중소병원이다. 하지만 정작 중소병원을 위한 국가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중소병원이 무너지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류재광 대한중소병원협의회 부회장ㆍ목포한국병원장) 지방병원을 포함한 중소병원은 정부의 지원 정책에 목마르다. 하지만 현재 보건의료정책에서 국가 의료서비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중소병원을 위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고기로 치면 머리(상급종합병과 종합병원)와 꼬리(원의원 등 1차 의료기관)를 위한 정책만 있는 셈이다. 중소병원이 무너지면 국가 의료시스템 기반이 무너진다. 중소병원을 살리려면 정부의 관련 정책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대한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실장은 “중소병원 정책 패러다임이 규제에서 촉진으로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 경영난으로 환자가 없어 텅 비어 있는 한 지방병원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상관 없음.) ▶“복지부, 중소병원에 대한 정의도 없어”
국내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은 약 1850곳이다. 전체 병원(2800여 곳)의 약 87%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부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인력수급 어려움, 환자의 수도권 대이동이 주요 원인이다. 그럼 이 같은 현안을 해결할 수 없는 걸까. 우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중소병원에 대한 정의도, 정부의 정책도 없는 게 문제다.

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실장은 “중소병원에 대한 복지부의 정확한 정의와 용어도 없다”며 “현재 중소기업법에 상시근로자 300인 이하를 중소기업으로 정의해 30병상 이상 300병상 미만을 중소병원으로 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어 “중소병원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복지부에 담당부서가 없고 관련 정책도 나올 수 없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지방 중소병원이 환자기근과 의료인력 수급 문제로 배수의 진을 치고 있지만 비빌 언덕이 없는 것이다.

복지부는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플랜을 진행하고 있다. 병원경영컨설팅 전문기업 프라임코어 이영신 대표는 “우리나라는 의원부터 종합병원이 모두 경쟁하는 구조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의료기관의 경영의 구조가 점차 악화되면서 정부가 의료기관의 기능을 재정립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 같은 대형병원은 중증질환과 연구중심으로 특화할 방침이다. 의원 중심의 1차 의료기관은 올해 4월 시행한 만성질환관리제로 환자 유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중소병원은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다. 이영신 대표는 “정부는 지방을 중심으로 한 중소병원이 지역거점병원이나 전문화병원 역할을 하길 바라는 것 같다”며 “하지만 아직 지역거점 병원에 대한 기준이 없고, 정책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해 애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정책에서 소외된 채 표류하고 있는 지방 중소병원의 병상가동률은 바닥을 맴돌고 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내놓은 2010년 병원경영통계에 따르면 전국 병원 평균 병상 가동률은 약 85%다. 하지만 30병상 이상 100병상 미만 병원은 약 60%에 그친다. 1000병상 이상과 500~1000병상인 상급종합병원이 각각 89%, 85%의 가동률을 보인 것에 크게 못 미친다. 500병상 이상 85%, 300~500병상 83%와도 격차가 크다.

▶“간호사 수입 등 정부 특단 대책 필요”
지방 중소병원을 살려야하는 당위성은 명약관화하다. 응급환자 등 거점병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환경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의료서비스를 탄력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특히 환자의 의료비와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등 국가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 이용균 실장은 “병원 규모별 병상 당 매출에 답이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약 4억 원, 종합병원은 2억 원, 병원은 1억 원이다. 중소병원이 비용대비 효과가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지방 중소병원의 문제를 방치하면 대부분 폐업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실장은 “지방 중소병원을 이대로 방치하면 저절로 사라진다. 정부는 중소병원을 살릴 건지 말건지 전반적인 관련 정책을 검토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이를 방증한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 전체 병상이 약 150만개에 달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약 95만 병상으로 줄었다. 이 실장은 “중소병원이 감소한 게 원인이다. 클리닉(의원)과 제너럴 하스피탈(종합병원) 사이에 끼어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지방 중소병원을 활성화하려면 크게 의료인력 수급, 환자 끌어안기. 경영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 인력수급 문제는 거시적으로 풀어야할 숙제다. 지방의대와 간호대가 있지만 졸업 후 모두 수도권으로 몰린다. 특히 병상 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의료인 배출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병원경영 연구원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10년 전보다 100% 증가했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의 증가는 50%에 불과하다. 국내 급성기 병상(외래와 장기요양병상을 제외한 병상)은 2001년 17만9869병상에서 2009년 35만9877병상으로 100%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의사는 7만1960명에서 10만2131명으로 41.9% 느는데 그쳤다. 간호사는 5만9607명에서 8만9997명으로 50.9% 증가해 병상 증가의 절반에 머물렀다. 1000곳이 넘는 요양병원의 간호사 흡수도 인력난을 부채질 했다.

목포한국병원 류재광 원장은 “서울과 수도권에선 월급 1000만 원이면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는데 지방은 2000만 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 했다.

지방 중소병원을 살리려면 우선 의료인력 수급문제를 해결해 서비스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방 중소병원의 인력수급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이영신 대표는 “현재 지역 간 의료인력 불균형을 해소할 정답은 없다”며 “의대 졸업생은 의대가 있는 지역사회에서 인턴, 레지던트 등을 의무적으로 마치고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균 실장은 “그리스에서 의사는 무조건 시골에서 2년 간 근무해야 한다”며 “하지만 지방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생의 70%가 스카이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다. 졸업 후 모두 수도권으로 이동한다”고 덧붙였다.

부족한 간호인력도 풀어야할 숙제다. 지방 간호대를 나와도 70~80%가 서울로 간다. 류재광 원장은 “간호사 수가 많은 만큼 수가를 더 주는 간호 등급제가 시행되며 간호사가 몰리는 대형병원만 이익을 보고 있다”며 “간호사를 구할 수 없는 지방병원은 오히려 손해다. 간호사 임금만 계속 오른다”고 현실을 전했다.

류 원장은 “한시적으로 간호조무사 2명을 간호사 1명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이것도 안 되면 정부는 간호대 정원을 늘리든가 간호사를 수입하든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요청했다.

■숍인숍ㆍ가산점 제도도 대안
의료기관의 ‘숍 인 숍(shop in shop)’ 허가도 의료인력 수급 해결의 대안 중 하나다. 이용균 실장은 “의료진 부족에 따른 서비스 공백을 매우기 위해 병원 안에 의원을 개설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 중국 등 외국에선 보편화 됐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원하는 진료를 받고 병원은 빈 병상에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공생관계 모델이다. 필요에 다라 의료장비도 공유한다.

하지만 숍인숍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 실장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에 문의하면 의료기관 숍인숍의 개설에 대한 법적인 해석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다”며 “특히 이해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가 병원만 살고 의원은 죽게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 중소병원의 경영활성화를 위해 가산점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용균 실장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오벽지 병원에 6%의 진료수가 가산율을 준다”며 “시골에 위치해 여러 가지 환경이 열악한 솔로 커뮤니티 하스피탈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는 지방 병원이든 수도권 병원이든 천편일률적인 행위별 가산율을 적용하고 있다. 행위별 가산율은 의원 15%, 병원 20%, 종합병원 25%, 상급종합병원 30%다. 중소병원이 어디에 있든 인센티브는 같다. 이용균 실장은 “지방과 오벽지 병원에는 행위별 가산율을 더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방 중소병원을 공공성 있는 지역거점병원으로 육성하는 정책도 대안이다. 이용균 실장은 “미국은 전체 환자 중 의료급여 환자를 25% 보면 사회안전망병원(세이프티 넷 하스피탈)으로 지정해 재정과 수가를 지원하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있다”며 “지역거점병원이 장삿속이 아니라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성 있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지방 중소병원 활성화 이슈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행정인력이다. 이영신 대표는 “서울과 지방의 중소병원 행정인력의 질 차이가 상당히 크다”며 “전반적인 병원 인력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책 지원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병원의 자구책도 필요하다. 이영신 대표는 “복지부의 의료기관 인증제가 서울과 지방 의료기관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실 감염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병원도 많다. 의료기관 인증제가 중소병원의 전체적인 의료서비스 수준을 올리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질적 정책 마련 위한 중소병원 선진화 TF 시동
고무적인 것은 복지부가 최근 중소병원을 살리기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다. 2009년 중소병원 발전 TF를 구성한 바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중소병원 중 99개 전문병원을 지정했다. 간호사 정원도 늘려 인력수급을 위해 노력했다. 제한적이지만 경영컨설팅도 지원했다. 하지만 아직도 손에 잡히는 지원책이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복지부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달 중순 ‘중소병원 선진화 TF’를 구성했다. 연말까지 활동할 예정이다. TF는 소병원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을 전제로 노력한 중소병원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대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또 세제‧공공요금 혜택, 질 제고방안, 의료소비자 정보제공, 인력난 해소, 보건의료분야 공공투자 연계, 인센티브 부여방안 등을 종합 검토한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강준 사무관은 “TF는 경영난에 처한 중소병원을 위한 실질적인 활로를 모색하고, 국민 의료서비스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해 발족했”고 설명했다. TF는 총 12명으로 구성됐다.

복지부 김원종 보건의료정책관을 팀장으로 보건의료정책과장, 의료자원정책과장, 의료기관정책과장, 공공의료과장, 보험급여과장 등 복지부 전문가 6명이 참여했다. 또 병원계 추천 전문가인 6인이 함께 했다. 이용균 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 최명기 부여다사랑병원장, 중소병원협회의 송중호 광명인병원 경영원장, 김태운 혜원성모병원 이사장, 유인상 뉴고려병원 의료원장, 전문병원협의회 이영신 프라임코어컨설팅 대표 등이다.

강준 사무관은 “2009년 중소병원 육성 TF를 구성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맞춤형 처방이나 실직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며 “근본적으로 중소병원이 장기적으로 자립이 가능한 비즈니스와 서비스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중소병원을 유형별로 세분화해 지원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정부의 정책과 함께 중소병원협의회도 자구책을 강구할 예정이다. 현재 병원협회에 속해 있는 협의회를 독립해 사단법인화 할 계획이다. 류재광 원장은 “그동안 건강보험 수가 등 다양한 정부 협상이 대형병원 중심으로 이뤄져 상대적인 피해를 봤다”며 “사단법인화하면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영신 대표는 “지방병원이 의료서비스 질과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정책들은 복지부, 지자체, 병원 3자가 협력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운하 기자 unha@joongang.co.kr

[인기기사]

·보훈병원 의약품 입찰 파동…고비는 9월 [2012/08/28] 
·매일유업 '퓨어'와 동서식품 '카누'의 공통점은? [2012/08/28] 
·개원가, 포괄수가 청구하려다가 '패닉상태' [2012/08/28] 
·군ㆍ관 ‘보건의료 질’ 향상 위해 협력 [2012/08/28] 
·기미 치료제 트란시노 [2012/08/28] 

황운하 기자 unh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