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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감독 신작 '수취인불명'

중앙일보

입력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 은 편안함 마음으로 감상하긴 어렵지만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성을 전달하는 '김기덕표 영화' 다.

흑인 혼혈이기에 '튀기' 라 불리며 경멸을 당하는 창국(양동근) , 한쪽 눈에 흉한 백태가 낀 열일곱살 은옥(반민정) , 순수한 청년이었지만 주변인들의 학대로 잔인하게 변해가는 지흠(김영민) 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수신 불가 판정이 내려진, 시대에 짓밟힌 슬픈 초상들을 암울하면서도 직설적으로 그려냈다.

김기덕 감독은 "열일곱 열여덟살 무렵 내 주변에 있었던 인물을 그대로 그렸다" 며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갔던 그들의 삶이 오늘날에도 거의 변한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인데, 그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고 말했다.

1970년대 미군부대가 있는 마을, 양공주였던 창국 어머니(방은진) 와 창국은 미국으로 떠난 흑인 남편이 자신들을 데리러 올 것이란 희망을 안고 끊임없이 편지를 쓴다.

은옥은 신체적 장애 때문에 성격이 폐쇄적이어서 순수한 지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낫게 해준 미군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다.

'섬' 에서 여주인공이 자신의 성기 안에 낚시바늘을 넣는 장면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도 여인의 가슴을 도려내거나 개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등의 엽기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행위들의 이면에 상황을 설명할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치돼 있어 작품의 흐름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양동근의 획기적인 연기 변신이 눈에 띄고 조연이지만 개장수로 나선 조재현, 창국 어머니 역을 맡은 방은진의 열연이 뇌리에 박힐 만큼 힘이 있다.

반면 미군 역의 제임스(미치 말럼) 의 연기가 어설퍼 사실성을 좀먹고, 이야기 전개가 다소 방만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제작비 8억원의 저예산 영화인 점을 감안하면 감독의 패기는 높이 살 만하다. 6월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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