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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51% 대통령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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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정선구
산업부장

( )를 알면 회사가 보인다.

 ( )에 강하다와 계산에 강하다는 다르다.

 ( )에 강한 사람은 문제의 본질을 찌른다.

 괄호 안의 답을 ‘숫자’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 한국CFO스쿨이란 단체에서 알려준 얘기다. 이나모리 가즈오(<7A32>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은 “회사 내 숫자들은 회사의 비전을 위한 지표”라고 말했다. 숫자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는 숫자와 함께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다. 태어날 때 받는 사주는 모두 숫자다. 키와 몸무게, IQ도 숫자다. 20년 전 정치부 기자 시절 299명 국회의원 차량번호를 몽땅 외우라는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이야 차종이 다양하지만 당시엔 거의 검은색 고급 세단이었으니 번호판으로 식별할 수밖에. 그런데 스마트폰 시대에 사는 요즘엔 집 전화번호도 잘 모른다. 열에 아홉은 번호를 기억해내느라 10초 이상 머뭇거릴 것이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숫자 1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가 영업 신입사원 시절 99번 찾아가도 거절하던 곳이 있었다. 그러나 100번째 가니까 사줬다. 99번 찾아가서 포기했다면 그 99번은 모두 버리는 셈이다. 여기서 99와 100의 차이는 단순히 1이 아니다. 불가능과 가능의 차이다.

 삼성이 차세대 소재 개발을 위해 수학자들을 꾸준히 채용하고, IBM이 최근 수학박사 100명을 영입한 것도 그래서다. 퀴즈쇼를 보자. 5단계 질문에 다다르자 난관에 봉착한다. 친구에게 묻는 방법과 방청객에게 묻는 방법이 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답은 방청객이다. 그게 퀴즈를 맞힐 확률이 높다고 돼 있다. 바로 ‘집단지성’인데, 이 역시 숫자에 근거한다.

 대통령 선거도 박 터지는 수 싸움이 큰 볼거리다. 1987년 노태우 후보는 불과 36.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이 동시에 출마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됐다. 15대, 16대 대통령 선거 때는 박빙이었다. 김대중·노무현 후보가 각각 40.3%, 48.9%로 됐다. 2위 이회창 후보와의 차이는 겨우 1.6%포인트, 2.4%포인트. 숫자놀음이 희비를 갈랐다.

 그러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나온다. 이 숫자들은 제대로 민심을 반영한 것일까. 200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레오니트 후르비츠는 이런 투표제도를 연구했다. 40%를 얻은 A가 30%씩 얻은 B·C를 누르고 당선됐다면 결코 민의가 제대로 반영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60%가 반대해서다. 그래서 후르비츠는 효율적 배분이 이뤄지도록 판을 짜야 한다고 갈파했다.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다. 예컨대 이런 얘기다. 엄마가 케이크를 두 아들에게 나눠준다고 하자. 두 아이는 서로 큰 것을 가지려 한다. 서로의 불만을 없애는 방법은 한 아이가 자르게 하고 다른 아이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르는 아이는 최대한 공평하게 자르려 할 테고, 선택하는 아이는 마음에 드는 케이크를 고를 것이다.

 2007년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거의 더블 스코어로 이겼다. 하지만 그 역시 50%를 넘지 못했다. 과반 지지가 없는 가운데 큰 차이로 이긴 자만심을 비판하는 여론은 그래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팽팽한 두 후보가 51%와 49%로 나눠 갖는 구도가 바람직할 듯싶다. 역대 대선에서 이와 비슷한 적이 있었다. 67년 박정희 후보는 51.4%를 얻어 윤보선(40.9%) 후보를 물리쳤다. 71년엔 53.2%로, 45.3%를 얻은 김대중 후보에게 승리했다. 이후 그는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 같은 반(反)민주의 길을 걷긴 했지만, 민주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금은 그리 되지 않도록 메커니즘 디자인이 돼 있다.

 이제는 완전한 양당제도가 정착돼 두 후보 간 접전이 될 수 있는 메커니즘 디자인이 필요한 때다. 과반을 훌쩍 넘기기도 어렵겠지만 그 경우 자만하게 되고, 그렇다고 과반에 턱없이 못 미치는 득표율로 당선되면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지 못할 것이다. 후르비츠 이론에도 맞추고, 국민에 겸허한 대통령도 보고, 숫자싸움 재미도 만끽할 겸 51%의 대통령을 기대해 본다. 대통령 팔자도 숫자놀음에 판가름 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