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 사진으로 악명 높은老작가의 속마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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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호 26면

우리는 자극적인 것에 끌린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익숙하지 않은 것이나 흔히 볼 수 없는 것과 마주하면 오랫동안 눈길을 멈추고 쳐다보게 된다. 그 결과로 그 장면을 더 잘 기억하게 되는 것인데, 중요한 건 어딘가에 눈을 고정하고 있으면 다른 한편으론 보지 못해서 놓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아라키 노부요시(1940~ )에 대해 ‘변태’니 ‘괴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은 간간이 그가 보여주는 깜짝 놀랄 만큼 자극적인 사진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외설적이라 할 만한 행동을 일말의 꾸밈이나 망설임 없이 노출하는 사진들로 그를 기억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하지만 그러느라 작가로서의 아라키가 지닌 생각이나 평범한 소재들을 다룬 사진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적었던 것 같다. 칠십 평생을 사진 찍는 사람으로 살았고, 젊은 시절 십 년 가까이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쌓은 탄탄한 기본기와 지금까지 400권이 넘는 작품집을 출간한 에너지만으로도 그의 세계는 예사롭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은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가 지닌 생각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글들로 구성됐다. 사진을 찍기 전 마음과 몸의 준비에서부터 카메라와 렌즈의 선택,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지니는 태도, 사진을 고르고 정리하는 법, 사진에 담기는 시간성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사건의 진술과 핵심을 찌르는 통찰의 어우러짐이 흥미롭다. 특히 그의 사진론의 정수라고 할 만한 ‘사진사정주의(寫眞私情主義)’를 특유의 잘난 척과 농담을 섞어가며 풀어내는 대목들은 재미를 넘어선 공감의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사진은 “위로하는 사진”이므로 낯선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느낄 허용과 적대감을 배려한다면 복장부터 신경써야 한다며, “낚시하러 가는 차림의 조끼, 특히 주머니가 여러 개 여기저기 달린 조끼를 입는 차림. 그런 차림으론 사진을 못 찍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대목에선 격하게 호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선 비장함이 아니라 앞으로 내게 다가올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소위 ‘슈팅 재킷’을 전투복처럼 챙겨 입으면 나도 상대방도 비장해져서 딱딱하게 굳어진 마른 빵 같은 사진밖엔 나오지 않게 된다. “겉모습만 찍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자신의 초라함을 나타낼 뿐 좋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만나는 아라키는 ‘대상에 집중하는 동시에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사진의 중요한 미덕으로 삼는다. 카메라 앞에 있는 피사체에 따라 즉흥적으로 프레임이나 톤을 바꾸되 그들을 통해 내가 새롭게 경험하게 된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사진은 관계이므로 나와 상대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사진가가 할 일은 그때 자신의 ‘기분을 데생하는 것’이라는 건데, 그의 사진이 의식과 무의식, 감성과 이성의 사이를 줄타기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기꺼이 나를 변화시키는 희생 간의 균형감각이 아라키 노부요시라는 작가를 만든 것이리라.

“어쨌거나 나는 꼭 기본을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혁명가는 못 될 거라고 생각해요… 나야 뭐 국가가 멸망해도 당신만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역시 진정한 전문성은 종국에는 인간애로 통합되는 것일까. 온갖 난잡한 사진들로 악명 높은 노 작가의 이야기가 낯 뜨겁기보단 맘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이런 사랑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저자: 아라키 노부요시
역자: 백창흠
출판사: 포토넷
가격: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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