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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 한국외교의 기준은 58년 전 ‘변영태 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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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변영태 전 외무부 장관

독도에 대한 우리 외교통상부의 입장은 어제오늘 정해진 게 아니다. 58년 전 당시 변영태(1951~55년 재임) 외무부 장관 이 우리 측 입장을 단호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한 외교문서에 명시돼 있다. 3장짜리 이 구상서(note verbale)는 독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 정리한 문서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22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서한을 반송키로 한 결정에도 중요한 준거가 됐다고 한다.

 변 전 장관은 이 문서에서 “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갖고 있으며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권리를 증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52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 선포에 이의를 제기한 이후 계속 독도 영유권 주장을 펴왔고, 우리 정부는 독도에 경비부대를 상주시키고 한국 영토라는 표지를 세우며 대응했다.

일본은 54년 9월 25일 독도 문제를 ICJ에 가서 최종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정부는 한 달 뒤인 10월 28일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엔 논란의 여지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변 전 장관의 구상서는 이때 작성됐다.

1954년 10월 28일 변영태 당시 외무부 장관이 작성해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 ‘독도는 분쟁 지역이 아니며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우리정부의 기본 입장을 처음 정리했다. ‘아측구술서(我側口述書)’라는 제목으로 3장짜리 영문에 한글 번역본이 첨부돼 있다. [사진 외교통상부]

 “ICJ에 분쟁을 제출하자는 제안은 잘못된 주장을 법률적으로 위장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영토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유사 영토분쟁’을 꾸며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이다. 타협의 여지 없이 완전하고, 분쟁의 여지가 없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해 일본은 ‘유사 청구권’을 설정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를 과거사 문제로 연결시킨 것도 변 전 장관이다. 그는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 영토다. 독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합리하지만 시종일관한 주장에 대해 한국 국민은 일본이 동일한 방법의 침략을 반복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다”고 썼다. 이를 근거로 그는 “한국 국민에게 독도는 일본과 상대한 한국 주권의 상징이며, 또 한국 주권의 보전을 시험하는 실례다. 한국 국민은 독도를 수호하고 한국 주권을 보전할 결의를 갖고 있다”고 선포했다.

 문서와 함께 발표된 성명도 눈길을 끈다.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뒤 우리 정부는 65년 한·일 회담을 마무리 지을 때도 이 내용을 기본 방침으로 삼았다. 신용하(독도학회 회장) 울산대 석좌교수는 변영태 전 외무장관에 대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정립한 책임자”라며 “정부는 앞으로도 이 입장을 계속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장관도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식민지 이후 영토 수호를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굳건히 정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큰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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