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8. 싸이에게 권하는 말

중앙일보

입력

성교육의 시작은 자기 몸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남이 요구한다고 해서 자선 베풀 듯 선뜻 '개방' 혹은 '보시' 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대도 마찬가지다. 바로바로 욕구를 해결하는 게 인간다운 처신은 아니다. '유쾌한 교제' 가 끝난 후에 닥쳐올 긴 시간의 울적함을 또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올해 초 모처럼 텔레비전 쇼프로그램에서 개성적인 인물 하나를 발견하고 눈길이 갔다. 예명조차 개성적인 싸이가 바로 그였다.

얼굴이나 몸매는 이 시대의 규격화된 미의 기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요즘 젊은이의 사랑 풍속을 비틀면서도 그 말하기 방식이 재미있었다.

더구나 그는 립싱크를 거부했다. '판 틀려거든 입이나 제대로 맞춰라' 고 어느 무대에선가 일갈했대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그 도전(도발?) 이 마치 권력에 일제히 립싱크하는 통속의 무리들을 야유한 듯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싸이가 TV쇼 화면에 빈번하다 싶더니 드디어 시트콤(SBS '하니 하니' ) 에까지 등장했다. 음악프로는 물론이고 온갖 토크쇼, 버라이어티 프로를 '도배' 하더니 드디어 연기자의 세계로까지 '진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도 등장하는) 한 것이다. 싸이의 상품성을 간파한 제작진의 미각.후각, 그리고 행보는 남달랐다.

처음엔 상품으로 시장에 내걸렸어도 종국엔 작품으로 남게 되는 게 본인의 바람일 것이다. 화면 속의 종횡무진에 대해 싸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원하는 시선을 거부할 수 없어서' 라고 말했다. 아니다. 거부해야 한다.

이땅의 오락풍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달구어졌을 때 다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 수많은 반짝스타들이 지금 어느 은하수 끝자락에 몸을 숨기고 있는지 눈여겨 볼 일이다.

히트작 '새' 에서 그는 "남의 시선 남의 이목 남의 크고 작은 목소리 되게 신경 쓰는 당신" 에게 경고한 바 있다. 그 목소리가 나를 단지 이용해 쾌락의 도구로 소모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귀한 존재로 남게 하려는 것인지 가늠해야 한다.

"나 갖다가 너는 밤낮 장난하나" 라는 부분도 나오는데 바로 지금 그가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장난치다가 제자리에만 갖다 놓으면 좋은데 방송의 생리상 그런 의리는 없다. 한번 뱉은 껌은 다시 씹지 않는다.

오랜만에 나타난 개성적 엔터테이너가 "한순간에 새 됐어" 라며 주저앉지 않길 바라는 심정이다. 제작진이 아무리 간청해도, 시청자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그 유혹의 시선을 외면해야 할 이유가 있다. 지금이 그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