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대표 저술 영어로 번역, 숙원사업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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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존 조르겐센

한국불교는 1700년 역사를 자랑한다. 다양한 종파를 포용한 통불교(通佛敎)적 성격은 한국불교만의 특성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외에서는 중국불교의 아류쯤으로 여겨진다. 읽을 만한 불교 서적이 제대로 번역·소개되지 않아서다.

 이런 현실을 뒤바꿀 번역 선집이 나왔다. 지난해 출간된 ‘한국전통사상총서’ 불교 분야 13권이 최근 영어 번역을 마쳤다. 모두 2000질을 찍어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영국의 옥스포드·케임브리지 등 전세계 67개국 313곳의 한국학 연구기관과 도서관, 국내외 불교학자들에게 배포한다.

이번 선집은 한국을 대표하는 불교 서적을 망라했다는 평가다. 원효·지눌·서산대사의 저술은 물론 선(禪)·교(敎)·율(律), 주제별로 이름난 글을 모았다. 번역진도 화려하다. 로버트 버스웰(미국 UCLA)·찰스 뮐러(일본 도쿄대) 등 해외의 손꼽히는 한국불교 학자는 물론 옥스포드 박사 출신인 미산 스님 등 국내외 소문난 학승이 대거 참여했다. 공동 번역작업을 통해 정확성을 높였다. 6년간 정부 지원금 27억원이 투입된 조계종의 숙원 사업이다.

 번역에 참가한 호주의 존 조르겐센(60) 박사를 e-메일 인터뷰했다. 그는 연구에 방해된다며 그리피스대 전임교수직을 조기 은퇴한 한국 선불교 전문가다.

 -이번 총서 번역의 의미는.

 “지금까지 서구 언어로 번역된 한국의 불교서적 전체보다 더 많은 분량이 이번에 번역됐다. 그 동안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은 볼 만한 영어 번역을 찾아 수 많은 책과 학술지를 뒤져야 했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저술을 한자리에 모은 의미도 크다.”

 -외국 학계에서 한국불교의 위상은.

 “중국·일본에 비해 여전히 인지도가 낮다. 한국불교와 중국불교의 구분을 어려워하는데 이는 피상적인 관찰과 무지의 결과다. 불교계의 석학인 루이스 랭카스터(UC버클리) 명예교수는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와 내용은 동일한데 중시하는 부분이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번역본은 한국불교의 특징, 세계 불교 발전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번역에 어려움은 없었나.

 “같은 영어 사용자라도 미국·호주·영국 등 국적에 따라 번역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가령 ‘번뇌(煩惱)’를 대개 ‘affliction’으로 번역한다. 고통의 원인, 괴로움(distress)을 뜻한다고 봐서다. 하지만 번뇌는 깨달음의 장애로 여겨지거나 신념이 부족한 상태·흥분·분노 등을 포함하는 용어다. 그래서 나는 ‘frustration’으로 번역했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괴로운 상태를 뜻한다.”

-한국불교만의 특징이 있다면.

 “흔히 호국불교, 통불교를 얘기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의 영향 때문이다. 한국불교만의 국가적 특성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변치 않는 특성을 얘기하는 자체가 모든 것은 변한다고 보는 불교의 철학에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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