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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버스·전철에서 내 옆자리에 싫은 사람이 앉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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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람 심리는 대개 비슷한가 보다. 경기도에 사는 나는 아침마다 서울행 광역버스를 탄다. 종점이 가까운 덕에 빈자리가 많다. 정류소에서 줄 앞쪽에 선 날엔 좌석 선택권이 넓어진다. 먼저 버스에 오른 승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2인용 좌석에 한 명씩, 대개 창가 쪽을 차례대로 채운다. 이어 올라온 이들은 2인용 좌석에 앉아 있는 잠재적 동반자들을 좍 훑어본 뒤 어느 자리에 갈지 재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결정을 망설이면 뒤 승객에게 실례이고, 너무 급히 앉았다 후회하며 다른 자리로 옮기면 왠지 반지빠르고 촐랑대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겁난다.

 전철도 그렇다. 고양시 대화역 같은 종점에서 출발하는 전동차 문이 열렸다 치자. 승객들이 우선 원하는 곳은 대개 가장자리다. 다음 손님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좌석 중간중간에 앉는다. 딴 자리가 있는데도 모르는 사람끼리 붙어 앉는 경우는 없다. 그러고 보면 대중교통 타는 일도 나름대로 고민과 결단의 연속이다. 잔머리 경연장이다.

 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미국 미디어들은 최근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 저널에 실린 재미있는 논문을 소개했다. 예일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에스더 킴이 쓴 논문의 주제는 장거리 버스 승객들에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비사회적 행동’이다. 그녀는 연구를 위해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이틀하고도 17시간 걸려 코네티컷주~뉴멕시코주를 여행한 것을 비롯해 2년에 걸쳐 캘리포니아~일리노이, 콜로라도~뉴욕, 텍사스~네바다 노선을 몸으로 체험했다.

 결론은? 1단계로 전체 좌석이 여유 있을 때 장거리 승객들은 새로 버스에 오른 손님이 되도록 옆자리에 앉지 않게끔 정교하고 섬세한 몸짓을 꾸며낸다.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옆자리에 가방을 놓아두거나 늘어져 자는 척한다. 복도 쪽 자리에 앉아 아이팟에 열중함으로써 새 승객이 창가 자리를 원하는 기색을 전혀 눈치 못 챈 듯 행동한다. 심지어 실성한 사람처럼 창밖만 멍하니 응시해 두려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2단계로, 손님이 다 차서 어차피 누군가 옆자리에 앉아야 할 때는 ‘보통 사람’이 오기를 기대한다. 피하고 싶은 사람 1순위는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다. 뚱뚱하거나 지저분한 사람, 수다쟁이도 기피 대상이다. 인종·계층·성은 오히려 큰 변수가 아니라고 킴은 주장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누구나 안전하게, 불편하지 않게 여행하고 싶어 한다. 지난 주말 의정부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다. 끔찍한 범행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 범인이 오랫동안 힘들고 고립된 생활을 해 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동안 우리 사회 누구도 그에게 옆자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짐짓 조는 시늉을 해 왔던 것은 아닐까.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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