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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를 사랑했던 중국인, 기독교 신자 7000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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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길가에 교회당이 보인다. 중국의 건물과 생김새가 달라서 눈에 금방 들어온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인데 진짜 예배를 보는 곳일까? 종교의 자유를 떠나 기독교가 중국인 기질에 맞기는 한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 기독교는 1300년 동안 중국의 문을 두드렸다. 시초는 잘 알려진 대로 당 태종 때인 635년 네스토리우스파(景敎)였다. 당 태종으로부터 포교의 자유는 물론 융숭한 대우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의 교세가 의미 있는 규모로 성장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교회가 자주 출몰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교회의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기회가 좀처럼 나지 않았는데 기회가 왔다. 허난(河南)성의 상청(商城)현에서 339번 성도를 따라 광산(光山)현으로 가는 길에 파스텔톤 회색 건물의 뾰족한 지붕 위에 붉은 깃발이 아닌 붉은 십자가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문이 열려 있어 다짜고짜 자전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린위탕(林語堂)은 35년 쓴 『내 나라 내 국민(My Country, My People)』이라는 책에서 중국인은 절대 기독교도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보는 중국을 제대로 된 영어로 서방에 처음 소개한 이 책은 펄 벅의 권유로 쓰여졌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서방인들의 중국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린은 “중국인은 현세에서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위해 현세의 삶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린의 아버지는 기독교 선교사였다. 그는 양쪽의 문화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단언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린 자신이 20여 년 뒤 『이교도에서 기독교도로』라는 책에서 기독교로의 귀의를 밝혔듯이 기독교도가 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중국인들이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의 이름은 톈언탕(天恩堂).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에 반가워하면서 교회당 곳곳을 안내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기독교의 나라다. 예배당은 400∼500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단 위에는 피아노와 함께 드럼이 놓여 있다. 두 악기의 조합이 미국이나 한국과 다른 분위기의 예배를 암시하고 있다. 평일임에도 신도들이 찬송가 연습을 하고 있어 활기찬 교회임에 틀림없다. 등록된 신도 수가 2000여 명으로 신양시에서 큰 교회에 속한다고 한다.
찬송 부르는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은 한국의 아주머니와 다를 바 없는데 귀에 들리는 찬송가는 중국어여서 꼭 다른 신을 찬송하는 것 같다. 안내해준 아주머니는 방언이 심해서 말이 안 통하자 다른 분을 불러왔다. 찬송을 지휘하던 이 교회의 성가대장이다. 상황이 조금 나아져 내 말은 알아듣는데 그가 하는 말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다. 노트를 내밀며 써달라고 했다. 이 교회를 세운 목적을 물으니 이렇게 썼다. “복음을 전파하고 정신적인 구원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믿게 됐느냐고 묻자 ‘신의 부르심’이라고 썼다. 답이 너무 간단했다. 그에게는 정확하고 진실한 답변이겠지만 내게는 필요한 세부적인 내용이 빠져 있다. “이 교회에는 목사님 안 계시느냐”고 묻자 “목사님은 원래 없다”면서 이 교회의 장로에게 휴대전화로 연락했다. 15분도 채 안 돼 리정허(李正合) 장로가 오토바이를 타고 부랴부랴 당도했다.

교회 사무실의 벽면에는 전도추진 계획이 촘촘하다. 그는 신양의 특산차인 마오젠(毛尖)을 따라주면서 얘기를 이어나가는데 순수하고 확신에 가득 찬 표정이다. 이 교회는 2010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 큰 건물을 누구 돈으로 지었는지 궁금했는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100여 년 전에 중국인 목사가 세운 교회가 있었는데 문화대혁명기에 파괴된 뒤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개혁·개방 이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자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아 새로 교회를 세웠다는 것. 교회가 재산처럼 인정돼 정부의 돈으로 지었다는 게 놀라웠다.

중국에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농촌의 경우 종교 부문 담당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경계하는 담당자가 있는 곳은 포교의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중국에서 파룬궁이 철저한 탄압을 받은 것도 사람을 규합하는 힘 때문이었다. 그는 종교 부문 담당자와 계속 협상을 하면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이 편리하고 교회 면적이 커서 신도들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 기독교 신자의 수가 1억8000만 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고 하면 중국 인구의 13억70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인데 기독교 신자 수는 누구도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세계종교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신교 2350만 명에 구교 600만 명으로, 3000만 명쯤이다. 등록 안 하고 활동하는 가정교회가 많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7000만 명인 공산당원의 숫자보다는 조금 많다고들 본다. 물론 교회에서는 공산당과 같은 까다로운 가입절차는 없기 때문에 이 숫자를 공산당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는 근거로 삼기 어렵다. 어쨌든 중국에서 무신론자들이 많은 걸 감안하면 기독교의 신장세는 놀랍다. 신교 신도의 절대적 숫자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이 아닐까 싶다. 그는 급증하는 신도 수에 비해 목회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해 이 교회처럼 목사 없는 교회가 많다고 한다.

허난성을 돌아다니면서 보통 합가환락(合家歡樂)이나 오복림문(五福臨門) 같이 가정의 평화와 복을 비는 문구가 써 있는 대문 위 현판에 ‘이마네이리(以馬內利)’를 붙여놓은 집들을 제법 봤다. 아는 한자의 지식을 총동원해 사자성어를 풀어 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임마뉴엘(Immanuel)의 중역(中譯)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이라는 뜻인 줄 나중에 알게 됐다. 공공연하게 ‘우리집은 기독교’라고 표방할 만큼 신앙의 자유가 허용돼 있거나 신앙심이 깊은 것이다. 허난성은 인구 1억 명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성이면서 기독교 인구도 가장 많은 성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농촌인 이 지역에 이렇게 기독교 신자가 급증하고 있는 원인이 뭘까. 중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적 배경 중 하나가 원죄론이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죄를 지은 인간에게 원죄가 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속죄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서 천당을 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태평한 중국인들은 린위탕의 말대로 이 지구에서 사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읊어 왔고 자신의 분신인 자손들의 번성을 통해 영생을 구해 왔다.
하지만 최근 반세기 동안 허난성에서 일어난 끔찍한 재난은 현세의 삶을 음풍농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랫동안 중국인의 사고를 지배해온 유교는 공산주의에 의해 부정됐고 한때 농민을 열광시켰던 공산주의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서로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얽히게 했다. 개혁·개방 이후 가난은 퇴치됐지만 노골적인 물질 지상주의에 영혼을 의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함포를 앞세워서는 중국인들을 교화시키지 못했던 기독교가 ‘구원’의 메시지로 틈을 파고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리 장로는 올해 44세로 14세 때 우연히 성경을 읽게 되면서 기독교를 믿어 왔다고 말했다. 그 사실을 안 어머니로부터 혼나기도 했지만 30년간 신앙을 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농사를 짓다가 지금은 미장원을 하는 부인을 도우면서 교회 일을 보고 있다. 그는 말끝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는 뜻의 ‘간셰주(感謝主)’라는 구절을 붙였다. 한국의 열혈 기독교신자 못지않다.

인터뷰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도 괜찮느냐는 물음에 그는 중국에서 보도되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며 흔쾌히 사진과 실명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교회를 빠져나가면서 자전거를 세우고 교회당을 렌즈에 넣으면서 보니 교회의 담장에 뜻밖의 표어가 적혀 있다. ‘가족계획을 확실히 실시해서 당대에 공을 세우고 후대를 이롭게 하자’.
기독교에서는 가족계획, 즉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표어를 교회 측에서 게시한 것은 아닐지라도 정면 담벼락에 붙여 놓을 만한 표어는 아니다. 중국의 기독교는 혹시 중국적 토양에서 다르게 변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톨릭의 경우 대주교를 중국 정부에서 임명한다. 전 세계의 주교 임면권을 쥐고 있는 바티칸은 당연히 그 주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의 미사에 참석하면 그는 기독교 신자일까 아닐까. 중국의 기독교는 교세가 확산되기는 하지만 서방의 기독교와 다른 모습을 띨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산주의와의 차이는 더 크겠지만.

홍은택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는 등 14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NHN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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