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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판소리로 돌아보는 ‘르네상스적 인간’ 정약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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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4일 열리는 다산음악회에서 공연될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다산은 열일곱 살에 진주 남강 촉석루에서 검무를 보며 “한 칼은 땅에 두고 한 칼로 휘두르니/푸른 뱀이 백 번이나 가슴을 휘감는 듯”(시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 중)이라고 읊었다. [사진 문화재청]

‘성인의 도(道)도 음악이 아니면 시행되지 못하고, 제왕의 정치도 음악이 아니면 성공하지 못하고, 천지만물의 정(情)도 음악이 아니면 조화되지 않는다.’

 조선 후기의 큰 학자였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자신의 음악철학을 밝힌 글 ‘악론(樂論)’에 이 같이 썼다.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이 음악을 즐기고 연구한 음악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전통 음악의 이치를 밝힌 다산의 음악이론서 『악서고존』.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사실 음악은 동양사상에서 통치·인격의 동의어로 인식됐다. ‘흥어시(興於詩), 입어례(立於禮), 성어악(成於樂)’이라는 공자의 말이 대표적이다. ‘시에서 감흥을 일으키고, 예에서 자신을 확립하며, 음악에서 완성한다’는 뜻이다. 일상의 실천을 강조했던 다산은 음악이 백성들의 분노를 풀어주는 최고의 방법이며, 따라서 훌륭한 정치인이라면 음악의 힘을 알아야만 한다고 믿었다. 직접 음악의 성률(聲律)과 악기를 연구해 『악서고존(樂書孤存)』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음악인으로서의 다산을 조명하는 행사가 열린다.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와 다산학술문화재단(이사장 정해창)이 주최하는 ‘다산의 숨결을 소리로 펼치는 한마음 큰 잔치’다. 24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는 다산의 시문에 나타난 흥취를 음악으로 재구성하는 제3회 다산음악회가 열린다. 9월 4일 오후 7시 30분에는 다산의 삶을 판소리로 엮은 창작 판소리 ‘다산’이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음악의 언어로 다산을 만나다=다산음악회는 다산의 시를 음악으로 재구성한 실험적인 공연이다. 1부에서는 ‘샘 위에 붉게 핀 두서너 가지 복숭아 꽃’으로 시작하는 다산의 평시조 ‘샘 위에’와 사설시조 ‘사람이’를 중요무형문화재 가곡 이수자인 변진심씨가 부른다. 또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유창씨가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애통해하며 쓴 시 ‘애절양(哀絶陽)’과 모기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돌아본 ‘얄미운 모기’를 각각 송서(誦書)와 잡가(雜歌)로 공연한다. 송서는 옛 선비들이 글을 읽던 가락을 되살린 국악의 한 장르, 잡가는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불리던 민속악의 하나다.

 다산은 17세 되던 해 장인이 부임해 있던 진주를 방문해, 남강 촉석루에서 기생들의 검무를 감상하며 긴 시를 지었다. ‘무검편증미인(舞劒篇贈美人·칼춤 시를 지어 미인에게 주다)’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무희들의 화려한 춤사위를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다산의 시가 스크린에 비춰지는 가운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진주검무 공연이 펼쳐진다.

 이번 음악회를 위해 다산의 한시를 한글 가사로 옮긴 김세종 다산연구소 연구실장은 “다산의 시를 노래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잡가·시조·판소리·송서 등 국악의 다양한 음악양식을 선보인다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국악관현악으로 듣는 시경=음악회 2부에서는 고대 중국의 시가를 모은 경전 『시경(詩經)』이 음악으로 되살아난다. 음악을 사랑했던 다산은 정조가 『시경』에 대해 조목별로 질문한 것을 강의 형식으로 답한 책 『시경강의』를 남기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악보가 전해지지 않는 시경의 시들을 대금·피리·가야금·아쟁·장고·북 등이 함께 하는 국악 실내악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편곡해 들려준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조선 후기의 학자로 반계(磻溪) 유형원과 성호(星湖) 이익 등으로 이어져 온 실학을 계승하고 집대성했다. 경학자·경세가인 동시에 과학자·의학자·언어학자·지리학자로도 높이 평가된다.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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