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휩쓰는 유동근·전인화 부부

중앙일보

입력

"어서 들라 하라!"

시종일관 자리에 앉아서, 눈 하나 깜빡 않고 호령하는 전인화(35) .

그녀는 3년여만에 SBS '여인천하' 의 문정왕후 역으로 TV에 복귀했고, 남편 유동근(45) 은 9일 첫 방송하는 KBS2 '명성황후' 의 대원군역을 맡아 사극으로 돌아왔다.

"월.화는 전인화가, 수.목은 이 유동근이가 책임지니 당분간 재미있겠죠?"

요즘처럼 TV에 사극이 판을 치는 시대는 이들 '사극 부부' 의 전성시대이기도 하다. 사극은 대사가 워낙 많아 연기자들 사이에 사극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화하기 어렵지만 두 사람은 부창부수(夫唱婦隨) 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

"집에서는 이 이가 자순대비(이보희) 도 됐다가 경빈박씨(도지원) 도 되지요. 저요?

집에선 당연히 제가 명성황후(이미연) 죠. "

두 드라마의 대본을 거실에 두고 틈나는대로 함께 대사를 연습한다고 했다. 그리고 유동근은 먼저 시작한 '여인천하' 를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다 봤다.

"밖에 있다가도 그 시간만 되면 뛰어들어와요. 연기자로서 선배이기도 하니까 이 장면은 어떻다, 저 장면은 이렇게 해야 되는데라고 코치도 많이 하죠. "

사극 전문인 유동근의 눈에는 '옥에 티' 가 보였나 보다. 그래도 장안에는 요즘 전인화의 눈빛 연기가 화제다. 김재형PD가 워낙 클로즈업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구중궁궐의 여인들이 말다툼을 벌일때면 연기자의 눈이 브라운관을 가득 채운다.

"아, '또 카메라가 눈쪽으로 들어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요. "

회를 거듭할수록 문정왕후는 이 눈빛처럼 기가 점점 세지고 있다. 이러다가 털털하고 강렬한 남편 유동근의 이미지를 중화시켜주던 전인화의 꼼꼼하고 온화하고 아늑한 이미지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착하디 착하고 곱디 고운 전인화가 이런 독한 연기를 할 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왕비 옷을 입힌다고 다 되는 건 아닙니다. 기품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배우가 전인화 말고 또 있겠어요?" 유동근의 극찬이다. 수양대군.연산군.조광조.이방원 등 조선시대 권력자 역을 두루 섭렵한 그이기에 립서비스는 아닐 것이다.

반면 '용의 눈물' 로 사극 연기의 권좌에 오른 유동근 본인은 어떻게 해야 이방원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또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지난달 27일 KBS에서 있었던, '명성황후' 의 성공을 비는 자리와 지난 2일 서울 하야트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때 만난 그는 자못 상기된 표정이었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명성황후' 가 '여인천하' 대열에 끼고 싶어하면 안됩니다. '명성황후' 는 역사적 사명이 있는 드라마예요. "

그렇게 사극과 역사에 대한 평소의 의견을 말하다가 이내 아내 자랑으로 돌아갔다. "돈 하나는 끝내주게 모으죠. 애들한테 충실하고 남편에게 잘 하니, 솔직히 아내감으론 최고 아닙니까. "

전인화가 결혼 후 저금통에 동전까지 모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그 저금통은 초등학교 4학년인 딸 시현과 2학년인 아들 지상이 관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1차 인터뷰 장소를 강남의 한 백화점 커피숍으로 정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인터뷰를 끝낸 뒤 전인화는 백화점 식품매장에 장을 보러 간다고 했다.

그녀가 공백기를 가진 것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인 지금이야 그래도 낫지만 유치원생과 1학년생을 놔두고 집을 비우기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전인화에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남편 유동근이 한 말은 "딱이다!" 한 마디였다. 두 사람 사이엔 무언의 큰 합의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생각해 보세요. 중전은 쉽게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잖아요. 궁궐 내에 주로 있는데다 앉아 있어도 이 사람 저 사람 다 찾아오죠. 야외를 찍는다해도 1~2주에 하루 경복궁에 나가면 되죠. "

오는 9일은 그들이 결혼한 지 12년 되는 날. 문정왕후와 대원군,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인물이 한 이불 밑에서 부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도 알고보니 별반 다를 게 없는 우리 이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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