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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문명과 인간 공존할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컴퓨터 기술의 진화가 가져올 미래상에 대한 '개방적' 자세를 보여주는 신간 『네번째 불연속』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이 책이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1993년이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당시만 해도 컴퓨토피아에 대한 환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 후 컴퓨터 기술의 진보가 몰고올 전지구적 재앙에 대한 경고도 많았다.

특히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창업자로 '컴퓨터계의 에디슨' 으로 불리던 빌 조이가 지난해 초 인터넷 잡지 와이어드에 발표한 '인류의 종말을 몰고올 기술을 중지해야 한다' 는 에세이는 지구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후 빌 조이의 에세이를 비판하며 '기술의 문제는 기술이 해결한다' 는 앨빈 토플러류의 낙관론에서부터 인간성의 자제력과 국제기구의 조정력을 신뢰하는 주장까지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듯이 이 문제는 우리 시대의 핵심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신간의 저자 매즐리시(미 MIT대 역사학과) 교수나 빌 조이가 보는 컴퓨터의 미래는 일단 동일하다.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로봇의 등장, 게다가 그 로봇 인간이 자기복제까지 가능하게 될 미래, 여기에 유전공학의 가공할 힘까지 보태어진다. 이 문제는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만의 주제가 아니다.

다른 점은 매즐리시가 컴퓨터라는 기계의 발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으로 보는 새로운 인식론을 설파하고 있다면, 빌 조이는 개인용 컴퓨터에서 정부 주도의 핵폭탄보다 무서운 재앙이 벌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서양의 지적 전통』(학연사) 의 공동저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매즐리시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인간의 동물적 본성뿐만 아니라 도구나 기계와의 관련성을 새롭게 규명하며, 기계문명과 인간 사이의 공존을 모색한다.

책 제목과 부제에 매즐리시의 문제 제기와 결론이 들어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과 기계는 함께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역사적 근거로 저자는 세계에 대한 인식에 전환점을 가져온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을 꼽는다.

세명의 선학들은 우주와 동물 등에 대해 인간의 우월함을 강조했던 기존의 인식을 깨고 우주와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 세계관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들에 이어 저자는 또 하나의 네번째 연속성을 주장한다. 그것이 인간을 기계와 불연속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진화하고 공존하는 연속적 관계로 보는 새로운 인식론이다.

저자는 윤리나 종교성과 같이 전통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자존심을 나타내는 어떤 경계선도 미리 긋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보면 저자가 내세우는 인식의 혁명은 모두 서양의 신(神) 중심 세계관을 뒤엎은 사건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친절하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담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단서를 여러 차례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근대 과학기술의 성과가 비(非) 서구 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서양에만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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