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다시 남발되는 대규모 SOC 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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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선 후보들이 또다시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대구에서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을, 김문수·김태호·안상수 후보는 제주에서 제주 신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소요되는 돈과 재원조달 방안은 물론 어떻게 공약을 이행할지 등에 대한 내용은 없다. 물론 이들만 그런 건 아니다. 선거 때마다 계속 반복돼 온 일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사회적 갈등과 재정 낭비가 심각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똑같다. 단적인 예가 동남권 신공항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이다. 그때도 건설하겠다고만 발표했을 뿐, 경제적 타당성이나 재원조달 계획 등은 없었다.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지역 간 대립도 대단했다. 이런 갈등과 혼란을 다 겪은 후에야 비로소 타당성 조사가 시작됐고, 결국 실효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대규모 인프라 공약은 심각한 재정문제도 초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공약과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공약이 그런 사례다. 둘 다 모두 20여조원의 돈이 들어가는 대역사다. 그런데도 두 대통령 모두 후보 시절 재정자금은 크게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운하는 골재를 팔면 되고, 행정수도는 지금 행정부의 부지매각대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거짓이라는 건 지금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겪은 사회적 갈등도 엄청났다.

 이런 점을 지금의 대선 후보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건 어떻게든 당선만 되면 된다는 정치적 욕심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대선 후보들의 양식에 맡길 일이 아니다. 후보들이 무책임한 공약을 함부로 내놓지 못하도록 사전 통제해야 한다. 공약에 대한 엄격한 사전·사후 검증이 제도화돼야 한다. 공약을 내놓을 때부터 들어갈 돈과 재원조달 방안, 공약 이행 절차 및 기간이 적힌 공약별 이행계획을 같이 제출하도록 하자. 그런 후 중립적인 기관이 이를 검증하도록 하자. 공약의 실효성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