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OCUS] 끝나지 않은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논쟁…이젠 임의비급여 허용되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중증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A교수는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고민이다. 건강 상태가 악화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B라는 신약의 처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이 약을 처방하는 것은 껄끄럽다. 신약의 효능·효과가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 약으로 치료하면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많이 발표됐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 약을 처방을 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급여 기준이다. 해외와 달리 국내 급여기준으로는 아직 이 약을 처방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고 처방할 수도 없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처방하면 요양급여 기준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과잉진료를 이유로 약값을 삭감·환수 당할 수도 있다. 거액의 약값을 자신이 떠 안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약값을 환자에게 청구할 수도 없다. 의료법상 임의비급여로 분류돼 불법이다. 결국 A교수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도 최선의 진료를 못하고 바라만 봐야만 했다.

그나마 2006년 이후부터는 상황이 예전보다 나아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사전승인을 요청하면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시일이 너무 길고, 까다로워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고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법원, 의학적 임의비급여 인정은 했지만…

의료계에서 임의비급여가 다시 한 번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18일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의료진이 환자에게 임의로 진료비를 청구하는 '의학적 임의비급여'에 대해 제한적으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부터다.

임의비급여란 국민건강보험법령 상 요양급여와 법정비급여(=인정비급여)로 규정된 사항을 제외한 일체의 비급여를 뜻한다. 진료비를 의료기관에서 임의로 판단해 비급여로 처리한 것. 일반적으로 진료비는 건강보험·의료급여가 적용되는 요양급여와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로 나뉜다. 이 때 비급여 항목은 국민건강보험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법에는 규정돼 있지 않는데, 의료 현장에서는 임의로 존재하는 비급여가 있다. 바로 임의비급여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임의비급여의 유형으로 ①건강보험 적용되는 급여사항을 비급여로 환자에게 받은 임의비급여 ② 식약청 허가범위를 초과한 임의비급여 ③ 행위수가에 포함되어 별도 산정이 불허되는 치료재료대를 별도로 받은 임의비급여 ④ 선택진료 포괄위임규정을 근거로 환자가 선택하지도 않은 진료지원부서의 선택진료비를 받은 임의비급여로 구분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제한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눈도장을 찍은 것은 의학적 임의비급여다.

이런 의학적 임의비급여는 법적 기준이 의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발생한다. 요양급여 항목에 반영되지 않지만 효능이 좋다고 인정돼 치료를 위해 써야 하는 신약이나 첨단기술이라면 이에 해당한다. 꼭 필요해서 사용했는데도 제도가 이를 따라오지 못해 급여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참고로 현행법상 의학적 임의비급여 허용여부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의료기관 임의비급여 인정 앞으로도 까다로울듯

앞으로는 의료진이 마음껏 임의비급여로 적용해 최신 의료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물론 대법원에서 기존 판례를 뒤집으면서 임의비급여의 필요성을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원칙적으로 임의비급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임의비급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예전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대법원은 제한적으로 현행 급여제도에서 규정된 절차를 거칠 수 없는 ①시급한 사정이 있고 ② 안전성·유효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③충분한 설명으로 환자의 본인부담 진료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허용했다. 또 임의비급여가 필요한 근거에 대해서는 일선 의료기관이 입증하도록 했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배경택 과장은 "여의도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처분 항목 중 의학적 필요성이 있더라도 식약청 허가범위나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초과한 경우엔 예외없이 불법이었다"며 "의료계에서 임의비급여가 허용됐다고 생각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아니다. 여의도성모병원 소송과 관련해서는 2006년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이미 제도를 개선해 논란의 여지를 없앴다"라며 "일부 논란이 되는 것은 지속적으로 제도를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현 제도에서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엄격히 제한된 범위에서 식약청 허가사항을 초과해 약제및 치료재로를 사용할 수 있는 예외절차를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현행 17일 정도 소요되는 약제관련 사전·사후 승인제도의 처리 기간을 일주일 정도로 대폭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약제도입제도 중 허가범위 초과 약제 출처 복지부

이 외에는 오히려 임의비급여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배 과장은 "안전성·유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신의료기술이 남용될 가능성에 대해 치료결과 분석 같은 검증체계 내실화가 필요하다. 또 의학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자에 대해 정확한 내용설명과 동의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임의비급여 오·남용 안되도록 제도 개선"

일부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임의비급여 오남용을 우려하고 있다. 환자의 진료선택권과 건강보험 체계의 안전성을 축으로 하는 임의비급여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지난 5년간 지속됐던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논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대법원의 임의비급여 허용 예외조건 3가지를 느슨하게 적용한다면 남용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임의비급여 예외적 허용이 의료현장에서 전면 허용 효과로 나타나지 않도록 비급여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이어 "식약청에서 임상적 효과와 부작용 검증을 받지 않은 의약품에 대한 임의비급여는 자칫 변칙적 임상시험으로 악용될 수 있어 철저히 관리되야 한다"며 "식약청 허가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의학적 안전성·유효성 근거가 마련된 의약품의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요건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예외적으로 허용이 가능한 임의비급여의 3가지 요건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항암제 같이 사전심의를 필요한 경우에는 시급성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현행 여러 병원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의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와 동일한 경우를 기준으로 안전성·유효성을 판단할 것인지, 환자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등이다.

안전성·유효성 평가 기구와 의료진, 요양기관간 견해차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법원 판례 상 임의비급여 허용조건을 모두 갖췄어도 논란은 계속된다.

수가나 약가의 적용을 전적으로 요양기관 측의 임의 결정에 맡길 것인지 여부의 문제도 있다. 현행 법령상 비급여는 보험수가 규제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보험약가가 존재한 상황에서 허가사항을 벗어나 사용할 때 비급여 약가를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환자의 수급권이 제한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순천향대학교 보건행정경영학과 민인순 교수는 "요양기관의 자발적인 보험수가의 적용여부를 임의비급여 허용 조건의 하나로 포함시켜 판단 기준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도 문정림 의원을 중심으로 임의비급여에 대한 법개정 등을 검토 중이다.

"임의비급여 논쟁 커지면 의료 신뢰성 떨어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임의비급여 논란은 왜 생겼을까. 이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려면 국내 의료보험 체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짧은 기간에 전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하는 성과를 얻었다. 제도 도입 초기 의료보험 패러다임의 핵심은 모든 의료보험 가입자에게 평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단기간에 달성하기 위해서다.

국내 의료보험 체계는 저보험료-저급여-저수가로 구성됐다. 본인부담이 높고 많은 의료서비스는 보험급여에서 제외됐다. 의료계에서는 저급여를 중심으로 한 국내 의료보험 체계는 새로운 의학적 진단과 치료, 신약에 대한 보험급여 인정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험급여 대상을 정하는 방식도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를 네거티브 방식(비급여 항목을 열거하고 나머지를 급여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약제와 치료재료는 반대로 포지티브 방식(급여 대상인 항목을 나열하는 것)으로 운영한다.

이 두 방식이 섞여 있다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로 모두 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 건강보험 급여는 사실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기준으로 급여항목으로 인정되는 구조를 낳았다. 이런 이유로 일선 의료 현장에서는 급여대상인지를 두고 환자·의료인·심평원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구홍회 교수는 "여의도 성모병원 사태 이후 복지부는 의학적 임의비급여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문제해결에 나섰다. 식약청 허가사항 초과약제를 투여가 필요한 경우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나 항암제 사전승인제도를 통해 심평원의 사전 승인을 신청해 승인받으면 급여로 인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심평원 승인 시점까지는 2~4개월이 소요되는데 그 기간 동안 대체가능한 약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제도 변경으로 어느정도 해결이 됐지만 단순 급여기준 초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결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행 의료시스템 아래서 보험자는 공급량 억제를 위해 급여와 심사기준을 강화하게 된다. 결국 의료 자율성 침해라는 논란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기술이 고도화되고 환자의 욕구가 다양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급여기준 강화는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여의도성모병원은 2006년 4~9월 백혈병 등 혈액질환 환자에게 요양급여 비용을 전부 부담시켰다는 이유로 2008년 복지부로부터 과징금 96억9044만 원, 공단으로부터 환수금 19억3808만 원의 행정처분받자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면서 임의비급여 논쟁에 불을 붙였다. 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인기기사]

·[FOCUS] 끝나지 않은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논쟁…이젠 임의비급여 허용되나? [2012/08/13] 
·“간호조무사 면허 부여 어림없어” 뿔난 간호사들 집결한다 [2012/08/13] 
·다이어트 성공한 S라인 몸매 인기 여배우, 비결 알고 보니 [2012/08/13] 
·시신 유기 산부인과, 내원하면 파격적인 혜택 내걸자 [2012/08/13] 
·병원 음식점도 못 믿겠네…조리기구 녹슬고 유통기한 지나고 '엉망' [2012/08/13] 

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