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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중국 신성장동력… 중국돈으로 중국돈 벌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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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은 지분 16.96%를 보유한 지린은행을 통해 중국의 금융비즈니스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사진은 지린은행의 신용카드 광고판. [ImagineChina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분의 1은 중국으로 간다. 중국에는 또 약 4만 개의 한국 투자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중국과의 금융거래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은행들에게 중국 금융시장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상하이·베이징 등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규제, 현지 금융기관의 막강한 네트워크, 선진 외국 은행의 자금력 등에 밀려 시장을 파고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은행이 재중 한국인과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교민 비즈니스’ 범위를 넘지 못한다. 중국의 기업과 금융시장을 파고들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중국인을 상대로 한 은행 영업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그곳은 분명 국내 금융업체에도 열려 있는 기회의 땅이다. 전략만 잘 짠다면 말이다.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내 둥난후(東南湖)에 자리 잡은 지린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린은행은 하나은행이 지분 16.96%를 갖고 있는 지방 은행이다. 한국이 투자한 중국 은행으로는 유일하다. 지성규 지린은행 부행장은 하나은행과 지린은행의 합작에 대해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중국 내 여러 은행에 비해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는 게 중국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의 현실”이라며 “날로 성장하는 중국 은행과 함께 가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린은행은 지린성 정부의 금융·재정 관련 사안을 거의 독점적으로 처리하는 등 여러 이점을 누리고 있다.

하나은행, 지난해 거액 배당 수입
하나은행과 지린은행의 협력은 지분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지 부행장은 이사회 멤버(집행이사)로 활동하고, 지린은행의 국제업무를 총괄한다. 지린은행의 카드사업 진출, 개인맞춤형자산관리(PB)사업 등도 하나은행의 뜻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지린은행에는 하나은행에서 파견된 2명의 차장급 직원이 가계금융, 중소기업 금융 등의 분야를 맡고 있다. 물론 이들은 지린은행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지린은행 직원 신분이다. 지린은행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는 하나은행에도 귀중하다.

지린은행은 투자 첫해인 지난해 주당 0.08위안의 배당을 실시했다. 12억 주를 갖고 있던 하나은행에 9600만 위안(약 170억원)이 배당됐다. 첫 배당으로는 적지 않은 액수다. 지린은행의 순익은 수년 동안 연 40%가량 성장해 왔다. 그 성장의 결실이 서해바다 건너 하나은행 재무제표에 나타나고 있다. 남들이 어렵다고 고개를 내젓는 중국 시장에서 독자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은 아니다. 하나은행이 중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당시 중국은 도시 상업은행들의 통폐합을 추진했다. 지린성도 그랬다. 2006년 창춘은행을 중심으로 성(省) 내 여러 도시은행을 통폐합시켜 지린은행으로 발족했다. 중국 진출 기회를 찾던 김승유 전 회장은 문턱이 닳도록 지린성을 드나들며 투자를 모색했단다. 지린대학에 금융EMBA과정을 신설하는 등 공을 들였다. 지 부행장은 “7개 도시상업은행과 신용회사의 합병으로 탄생한 지린은행은 하나은행이 갖고 있는 금융통합의 노하우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하나은행의 인수합병(M&A) 경험은 그 자체가 협력의 좋은 무기였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 역시 중국의 틈새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의 재테크 투자상품인 진여우차이푸(金友財富)가 한 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이 상품 판매에 나섰다. 우리은행 상하이지점 양군필 분행장은 “연간 수익률을 약 3.3%로 예상한 상품인데 이를 계기로 중국 내 이재(理財·재테크)상품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 지난달 합작운용사 설립
전문가들은 지금이 중국 금융시장 진출의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이 금융을 주요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그동안 중국에서 금융업은 제조업의 지원부대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그러나 중국도 이제는 금융업 자체를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핵심은 민영화와 개방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4월 초 “대형 국유은행의 독점을 깨지 않으면 금융발전은 없다. 은행업의 독점을 깨는 게 공산당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는 ‘금융개혁 종합시범구’로 지정됐다. 민간 참여를 통해 국유 독점 체제를 깨겠다는 뜻이다. 지 연구원은 “금융 분야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중국 비즈니스에서도 사각지대였다”며 “중국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 분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6년이라는 세월 끝에 지난달 10일 상하이에 합작 운용사를 세운 것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회사명 ‘화천(華宸)미래’. 중국 투신사인 화천이 40%, 미래자산운용이 20%를 투자했다. 나머지는 재무적 투자가들인데 중국에서 71번째로 설립된 자산운용사다.

화천미래는 중국에서 일반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펀드를 조성해 중국의 금융상품에 투자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 QDII(공인 국내 기관투자가)펀드를 조성해 이를 한국 증시에 투자하고, 거꾸로 한국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성한 QFII(공인 외국 기관투자가)펀드를 중국 금융상품에 투자하기도 한다. 화천미래의 투자에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화천미래의 산파역을 맡았던 정이훈 수석대표는 “중국의 거대 자본시장에서 한국 미래에셋의 자금운용 노하우를 발휘할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다.

중국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패션업체인 이랜드는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대륙 금융시장에서 5억 위안 규모의 위안화 채권 발행에 성공했고, CJ와 롯데쇼핑 등은 홍콩에서 딤섬본드 발행으로 위안화를 마련했다. 이랜드 채권 발행 프로젝트를 주관했던 하나대투의 조강호 IB본부장은 “미래 한·중 경협 패러다임은 자본시장 교류 쪽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며 “현지 금융업체와의 신뢰 구축, 자본시장 운영에 대한 지식 축적, 중국 금융인재 양성 등 중국 금융 비즈니스 인프라를 지금부터 깔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중국에 진출했던 제1세대 중국 비즈니스맨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싸게 생산하느냐’였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내수시장에 본격 진출했던 제2세대 비즈니스맨들은 ‘어떻게 하면 많이 파느냐’를 고민했다. 미래 비즈니스맨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중국 돈을 잘 활용하느냐’를 연구해야 할 시기다. 그러려면 한·중 금융시장의 소통 채널을 구축하는 게 절실하다.

창춘·상하이=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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