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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장어 씨가 말랐다' 30대男, 식당갔다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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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0일 오후 7시 인천시의 한 장어구이 전문점. 이곳을 찾은 김광호(35)씨는 ‘민물장어구이 8만원’이라고 쓰인 가격표를 보고 놀랐다. 김씨는 “몇 달 새 2만~3만원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곳 주인 신운호(60)씨는 “장어 도매가가 지난해 1㎏ 3만2000원에서 최근 5만5000원으로 올랐고, 중국산 장어마저 구하기 힘들어 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물장어로 유명한 전북 고창 풍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장어구이집을 운영하는 오민성(41)씨는 “민물장어 구하기가 어렵다”며 “100곳이 넘는 장어집마다 매출이 예년보다 40% 줄었다. 내년은 더 힘들다며 폐업을 준비하는 가게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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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민물장어’로 불리는 뱀장어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2009년 500원이던 실뱀장어의 마리당 가격은 지난해 3000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최고 7000원에 거래됐다. 0.2g에 불과한 실뱀장어가 조기 한 마리 값(8월 현재 7900원)과 맞먹는 셈이다. 4~5년 전만 해도 7~10t가량 잡히던 뱀장어 치어(稚魚)인 ‘실뱀장어’가 지난해 겨우 1.5t이 잡혔기 때문이다(국립수산과학원). 뱀장어는 부화부터 성어까지 기르는 ‘완전양식’이 불가능하다. 실뱀장어를 잡은 뒤 양식장에서 6개월 이상 길러야 한다.

 전국 뱀장어 양식장 520여 곳 가운데 50여 곳만이 실뱀장어를 입식했다. 나진호 양만수협 조합장은 “미국·필리핀산 실뱀장어까지 들여오고 있지만 물량을 대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내년엔 ‘장어 대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실뱀장어가 잡히지 않는 것은 장어의 주요 소비국인 한·중·일·대만의 공통적 문제다. 장어가 ‘국민음식’인 일본에선 1963년 최고 232t이 잡히던 실뱀장어가 2010년 6t으로 급감했다. 올해 100년 넘은 장어전문점이 문을 닫는 등 ‘장어 파동’을 겪고 있다.

 실뱀장어가 귀해진 까닭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획과 지구온난화 등을 꼽는다.

 여기에다 한국의 경우 서식지 파괴가 주된 원인이다. 70년대부터 농수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하굿둑과 보가 실뱀장어의 민물 회귀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뱀장어는 부화는 짠물에서, 성장은 민물에서 하는 어류다.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전국 4155개 보 중 어도(魚道·물고기가 드나드는 길)가 있는 곳은 541개에 불과하다. 농어촌공사 측은 “최근 보수를 하는 보엔 어도를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환경단체는 4대 강 공사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운하백지화 경기행동’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까지 준설공사의 대상이 되면서 실뱀장어 등 회유성 어류의 보금자리가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황선도 연구위원은 “장어 대란은 대단위 개발계획으로 파괴된 환경이 인간에게 가하는 역습”이라며 “앞으로 이어질 전주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책으로 어도 설치, 종묘 방생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장어 대란을 피할 방법이 없다. 완전양식 기술이 일본에서 개발됐지만 아직 상용화가 안됐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연구에 착수했으나 걸음마 단계다.

 다른 나라에서는 뱀장어의 멸종을 막기 위해 국가가 나서고 있다. 고부가가치 어종인 데다 생태가 제대로 규명돼 있지 않아 연구가치도 높기 때문이다. 장어 시장 규모는 한국에서만 연간 2조원, 아시아 20조원대로 추정된다. 유럽은 ‘야생동식물 멸종위기종 거래에 관한 국제조약 ’에 따라 2013년부터 유럽산 실뱀장어의 국가 간 거래를 막을 예정이다. 미국도 뱀장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다. 일본은 지난 6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황선도 연구위원은 “실뱀장어의 멸종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논의하고 있는데 우리만 관심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진영은 인턴기자(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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