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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고뇌, 서울예술단 살릴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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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 주인공 윤동주를 연기한 서울예술단 단원 박영수씨. [사진 서울예술단]

시인 윤동주가 위기의 서울예술단을 구원해 줄 것인가.

 ‘윤동주, 달을 쏘다’란 작품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서울예술단(이사장 김현승)이 만들어 10일부터 사흘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했다. 새 예술감독(정혜진)을 뽑고, 위축된 단체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선 작품의 성공과 반향이 중요했다. 결과는? 다소 애매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예술단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해 만든 관 예술단체다. 올림픽을 맞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국가를 상징하는 문화 이벤트를 소화해 내는 게 주 임무였다. 올림픽 이후에도 생존했지만, 존재감은 서서히 약해져갔고 최근엔 존폐 여부마저 언급될 정도였다. 딱히 무엇을 하는 국립 단체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창극단처럼 특정 장르를 책임지지 않은 게 늘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일까. ‘윤동주, 달을 쏘다’엔 가무극(歌舞劇)이란 타이틀을 내걸었다. 외국 뮤지컬과 차별화해 한국적 공연 양식을 담아내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야심찬 취지가 작품에 제대로 투영되진 않아 보였다. 그냥 일반 뮤지컬과 다르지 않았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얘긴 아니다. 꽤 수준 높았다. 최근 5년간 서울예술단이 만든 작품중 가장 돋보였다. 음악은 전반적으로 유려했고, 가끔씩 찡한 대목도 있었다.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스며 있는 무대도 좋았다. 특히 마지막 부분, 일제시대와 같은 엄혹한 시기에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일인지 토로하는 윤동주의 모습은 울림이 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특별한 사건도, 뚜렷한 대결 구도도, 아련한 멜로도 없는 탓에 작품은 지루했다. 핵심적인 드라마가 증발한 채 윤동주의 내면을 보여주거나 주변 인물들로 변죽을 울리는 것만으론 관객을 흡입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비상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서울예술단의 분투는 분명히 전달됐다. 하지만 가무극이란 정체성은 불투명하고, 완성도는 있지만 딱히 탁월하다곤 볼 순 없는 ‘윤동주, 달을 쏘다’는 어떻게 봐야 할까. 여전히 길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서울예술단의 자화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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