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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전업주부 노동가치 왜 따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바깥에서 일하는 남성과 달리 많은 여성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 돌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도 많지만 아직은 집안일만 하는 주부들이 더 많지요.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집안 일은 가치없는 일이야" 라고. 정말 그럴까요. 이번에는 전업주부가 집에서 하는 일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볼까 해요. 지난달 27일 여성개발원에서는 전업주부가 하는 일의 가치를 따져보는 자리가 있었어요.

제목은 '여성의 무급노동 평가와 정책화를 위한 세미나' 였죠. 쉽게 얘기할게요. 여기서 '무급노동' 이란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 즉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 등을 가리켜요. 이 토론회에는 통계청 관계자.여성단체 대표.보험회사 관계자.소비자학과 교수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했답니다.

◇ 전업주부 노동가치는 얼마나〓전업주부가 집에서 하는 일의 월평균 가치가 적게는 85만6천원에서 많게는 1백2만6천원이라는 얘기가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하지만 엄마가 집에서 돈받고 일하는 집이 어디 있나요□ 집안일과 가족에게 쏟는 주부의 사랑과 정성을 모두 값을 매길 수 없으니, 이 통계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어쨌든 주부의 집안일에 대한 가치를 매기기 위해서는 주부들이 집안에서 어떤 종류의 일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쓰는지 알아야 합니다. 빨래하는데 몇 분, 청소하는데 몇 분, 식사 준비하는데 몇 분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 평가에는 1999년 통계청이 국민 한 사람이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밝힌 '생활시간조사' 가 기초자료로 큰 역할을 했어요.

◇ 가사노동을 평가하는 법 세가지〓가사노동의 가치를 매기는 법은 여러 가지예요.

첫째는 전업주부가 집안에 있는 대신 바깥에 나가서 일했을 경우 벌 수 있는 돈의 가치입니다.

여성이 '전업주부' 가 된다는 것은 결국 밖에서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 포기한 돈의 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계산된 국내 전업주부의 노동가치는 1백2만6천1백69원이라고 합니다.

둘째, 여러 가지 집안 일을 전문가한테 맡겼을 때 드는 비용입니다. 빨래는 세탁소에, 요리는 식당, 또 청소는 청소부한테 시켰으면 들었을 돈이 결국 전업주부가 번 돈으로 계산되는 거죠. 우리나라의 전업주부는 1년 동안에 월평균 96만8천5백55원 정도 가사노동을 한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셋째, 집안일을 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맡겼을 경우를 따져보는 겁니다. 이를테면 파출부를 고용해 드는 돈이 가사노동의 가치가 되는 거죠. 이 방법으로 가사노동 가치를 매겨보니 85만6천6백89원이었어요.

◇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둘러싼 의견〓집안에서 하는 일도 적잖은 가치가 있군요. 이제는 이런 평가가 필요한 이유를 짚어볼까 해요.

첫째,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전업주부가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보험료를 받잖아요. 또 여성이 이혼할 경우에는 남편과 재산을 나누죠. 이럴 때를 대비해 주부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해요.

현재 전업주부가 사고를 당해 꼼짝하지 못할 경우에 받는 월평균 73만3천1백3원은 실제 평가액의 71.4~85.6%밖에 안돼요.

결국 지금 많은 여성들이 보상액의 15~30%를 손해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보다 정확하고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면 누군가에게 불리하게 돼있는 제도를 훨씬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어요.

둘째, 돈으로 지급되지 않는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국내총생산(GDP)에 산입하면 국가의 복지 수준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해요.

여성개발원 김태홍.문유경 연구위원은 "가사노동을 포함한 무급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국민소득을 계산하는데 넣으면 보다 정확하게 그 나라의 복지수준을 알 수 있다" 고 하는군요.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어요. 사실 국제적인 GDP 평가기준에 가사노동은 포함되지 않고 있거든요.

최춘신 한국은행 국민소득팀장은 "가사노동을 국민소득에 포함시키면 가정을 소비가 아닌 생산주체로,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을 고용인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실업의 개념이 모호해져 고용정책 면에서 상당한 왜곡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고 합니다.

이런 지적도 있답니다. 이득로 대한손해보험협회 팀장은 "전업주부의 보상금이 올라가면 일반인이 내는 보험료가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고 했거든요. 그는 또 "경력과 월급 등을 종합해 고려하는 직장인과 달리 주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어렵다" 고 하는군요.

가사노동의 가치가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죠? 그래서 전문가들은 가사노동 가치 평가액을 반영해 이에 관련된 보험.조세.법률 등을 보완하려면 앞으로도 2~4년은 걸릴 것이라고 해요. 그래도 우리 사회의 생활.복지수준이 좋아질수록 주부의 가사노동과 자원봉사의 가치는 더욱 존중받지 않을까요. 주부는 한 가정의 원동력으로 국가 경제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는 일꾼이니까요.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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