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농업 정책은 내수를 충족하고 외래 농산물로부터 우리 농업을 방어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경쟁력을 키워 수출에 나서는 공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농촌진흥청 소속 국립농업과학원의 라승용 원장(사진)은 “농업의 첨단산업화가 그 해답”이라고 말했다. 10일 라 원장에게 농업의 첨단화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날 녹조가 심한 한강 주변 농지를 둘러본 라 원장은 “다행히 농사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라승용 국립농업과학원장
-농업의 첨단산업화는 어떤 의미인가.
“농업은 국민을 먹여 살리는 기간산업이며,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자산업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의 말대로 후진국이 공업으로 중진국까지 갈 수는 있지만 농업과 농촌의 발전 없이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게다가 1세대 농민의 초고령화와 농산물 시장 개방 등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려면 기계화·자동화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 등 위기를 기회로 해석하자는 뜻인가.
“미국·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과도 FTA가 곧 맺어질 전망이다.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과제는 발등에 불이다. 수세적으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보고 경쟁력을 높여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잦은 이상기후에 대응할 기술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농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본다. 100여 년 만의 가뭄, 폭우, 폭염 등 전례 없는 이상기후가 일상화하고 있다. 농업에는 모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환경제어가 가능한 시설재배 농업에 연구를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첨단산업화를 위한 국립농업과학원의 중점 연구개발 방향은.
“국립농업과학원은 농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곤충·미생물 등 농업생물 연구부터 생명공학, 농업 유전자원 관리, 농산물 안전성 연구, 농식품 가공 이용 등 연구 분야가 넓다. 첨단산업화를 위한 중점 연구 방향은 밭농사 기계화, 농업시설의 현대화, 농업 생산공정의 자동화·로봇화 등 농업 공학기술을 중심으로 추진 중이다.”
-농업 공학기술은 구체적으로 어디에 적용하나.
“농업의 기계화·자동화·로봇화는 생산성은 물론 농업인의 복지와도 관련이 깊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줄이는 것은 농업의 중요한 과제다. 특히 기계화가 많이 진행된 논에 비해 밭 작물의 기계화나 표준 재배법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워낙 품종도 많고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편 농업의 첨단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이것을 수출로까지 연결하는 게 필요하다. 그 기반을 구축하는 일환으로 시설농업의 현대화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간척지에 수출농업 전진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를 올 하반기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전진기지로서 간척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수출농업으로 가려면 규모의 경제나 품질의 균일성 등 여러 면에서 대규모 시설농업이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간척지는 최적의 후보지 중 하나다. 이미 간척지 적응형 온실모델 개발을 위한 기반연구에 착수했다. 간척지의 약점도 있다. 연약 지반이라 땅을 다지는 게 문제고 바람 등 악조건도 있다. 지반 보강 기술, 강풍·연무 등 해안지역 기상 특성을 고려한 적합 원예시설 모델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그 외 첨단화 관련 기술을 소개해달라.
“지금까지 시설 현대화 사업 관련 연구실적은 단위 기계 개발에 역점을 뒀다. 시설원예에서 사용하는 파종기, 이식기, 이동식 재배장치, 원격 환경제어장치, 인공광 제어기술, 채소 접목로봇 등 10여 종의 기술을 개발해 농업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내가 원장으로 온 뒤 첨단시설 현대화 연구실을 만들었다. 수출 농업을 위한 기반 구축의 일환이다.”
-첨단기술을 개발해도 이걸 농업 현장으로 전수하는 게 문제가 되는데.
“농촌진흥청에서 개발된 기술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을 통해 농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 6월 기술지원팀을 신설해 농업현장 기술 보급을 촉진하고 있기도 하다.”
-첨단산업화를 위해 부족한 점은 없나.
“첨단산업화를 위해서는 규모 있는 연구개발 투자가 지속돼야 하는 데 재정 여건상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다른 정부 부처도 마찬가지 입장이겠지만 농업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다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