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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심에서 30분 이상 떨어진 집 싫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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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호 26면

몇 년 전만 해도 도회지에서 집을 선택하는 으뜸 기준은 부동산 투자가치나 가격이었다. 도심이나 직장에서 먼 곳이라도 나중에 집값이 오를 것 같으면 기꺼이 매입하거나 분양받아 이삿짐을 쌌다. 하지만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이러한 생각이 크게 변했다. 최근 조사에서 주택 선정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교통’이라는 답이 가장 많다. 통근 시간을 기준으로 얼마나 가까워야 하느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직장까지 30분쯤이 괜찮겠다는 답이 많았다.

이상영 교수의 부동산 오디세이

서울 도심에서 30분쯤이라면 10~20㎞ 거리이고, 경기도 분당·일산 등 1990년대 초반까지 지어진 1기 신도시보다 도심에 가까운 지역이다. 대략적으로 보면 보금자리주택(그린벨트를 풀어 짓는 서민용 중소형 주택)이 추진되는 서울 강남 세곡·내곡 지구나 위례 신도시, 경기도 하남과 고양 원흥쯤 될 것이다. 경기도 김포·파주·용인 등 서울 도심에서 30~40㎞ 떨어진 2기 신도시는 당연히 관심권 밖이다.

도심 회귀로 교외 신도시 공동화
이처럼 직주(職住) 근접 선호가 급격히 늘어난 배경은 뭘까. 첫째, 불경기에 유가까지 급등해 통근비용 절감 욕구가 커졌다. 둘째, 도심 재개발과 이에 따른 일자리와 사회문화적 인프라의 증가로 도심 선호 현상이 확산됐다. 서울의 경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 주상복합군이나 정동 등 종로지역 주상복합지역이다. 전셋값이 뛰어 외곽지역을 찾거나 귀향·귀촌하는 행렬도 만만찮지만 전반적으론 도심 주거지 선호 흐름이 우세하다.

도심 회귀는 선진국의 공통된 추세다. 일본도 1990년대 중반부터 도쿄 주변 신도시에서 도쿄 도심으로 인구가 다시 유입됐다. 롯폰기 힐스나 미드 타운, 마루노우치 등 ‘도심재생사업’이 활기를 띤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도쿄 인구가 증가하는 대신 도심에서 30분 이내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을 위주로 신규 주택사업이 벌어지면서 과거 신도시는 급속히 노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경우 대도시 중심부에서 범죄가 빈발하면서 중산층의 교외 탈출 러시를 초래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경기가 회복되고 도심 범죄율이 줄면서 도심 재개발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교외 중산층들의 도심 회귀가 활발해졌다.

근래 수도권 외곽지역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급속히 떨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1~2인 가구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 지역에서 전용면적 132㎡(약 40평) 이상의 대형 아파트는 찬밥 신세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주로 보유한 대형 아파트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이들 은퇴 세대의 노후 설계에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수도권 2기 신도시 대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베이비부머들은 서울 시내 또는 1기 신도시의 기존 아파트를 팔고 이주해야 할 판인데 이런 거래 순환이 원활치 못하다.

수도권 대형 아파트 매매의 동맥경화는 매매가의 급락을 가져왔다. 2006~2007년 정점에 비해 30~40% 떨어졌다. 중대형 아파트 기피 현상은 수도권 주택 미분양 사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다. 수도권의 미분양 적체는 일반적 경기순환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해 연말 16만5000가구를 넘던 국내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 6월 말 현재 6만2000가구로 3분의 1 가까이로 줄었다. 하지만 미분양 해소는 대부분 지방에서 이뤄졌고, 수도권은 여전히 3만 가구에 육박하는 미분양에 시달린다. 2007년 말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가 1만4000가구였으니까 두 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경기도에서만 2만 가구 넘는 아파트가 미분양 상태다.

아파트 미분양, 새로운 해법 찾아야
대도시의 성장기에는 도심주택 부족을 해결하려고 교외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한다. 이른바 ‘주거의 교외화(suburbanization)’는 고도 성장 경제의 상징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같은 과거 유행가 가사는 중산층의 꿈과 부합해 널리 회자됐다. 미국·일본의 경우 일찍이 1960~70년대에 대도시 인근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모여 사는 신도시가 많이 건립됐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늦게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서울 인근 수도권에서 대규모 신도시 사업이 진행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내 집 마련에 뛰어든 30대 초·중반 연령의 베이비부머는 1기 신도시를 통해 대거 꿈을 이뤘다. 그들은 2000년대 이후 대형 평형 아파트의 주 수요층이 되면서 2기 신도시에서도 아파트 분양 물량을 소화할 주력 소비계층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의 정점이 2006년이었다. 그해 수도권에서는 높은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역에서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초조해진 대기 수요자들이 대거 주택시장에 진입하면서 기존 아파트와 연립주택 가격마저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이해 가을 수십만 가구 주택이 단기간에 거래됐다. 이후 주택가격은 정체와 하락의 길을 걸었다.

되풀이 강조하면 2008년 이후 수도권 아파트 가격 하락과 미분양 아파트 급증은 부동산경기 순환의 틀에서 보면 안 된다. 신도시의 역할이 수명을 다하고 도심회귀 현상이 뚜렷해지는 등 주택 선호 패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택경기 침체가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된다고 곧바로 수도권 내 주택가격 하락세가 멈추고 미분양이 눈에 띄게 줄지는 미지수다. 통상적인 경기 대응 방안보다 ▶지역별 주거지 개발 방식의 변화 ▶교통 체계의 근본적 개선 ▶새로운 고용센터의 창출 등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가령 주거지와 사업체를 연계하는 복합개발 방식을 도입한다든가 도심과 교외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상영(50) 서울대 경제학 박사로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일했다. 부동산114를 설립해 경영하기도 했다. 『내일의 부동산파워』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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