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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딱 끊기보다 단계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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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인의 날’ 밥상에 올라온 소스들. 왼쪽부터 토마토 살사 소스, 오리엔탈 소스, 레몬 간장 소스,
양념 간장 소스, 키위 허브 소스, 견과류 머스터드 소스.마요네즈나 유제품 같은 동물성 재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피부 관리를 위해서, 살을 빼보려고, 건강에 좋다니까, 동물권 수호 차원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그래서 그들은 육식을 끊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교동 토마토전문 음식점 ‘토마스터’에 모인 채식주의자들의 이야기다.토마스터는 이날 ‘채식인의 날’ 행사를 열었다. 첫 번째 행사. 앞으로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마다 진행할 계획이란다.선착순으로 예약을 받은 30명의 채식인들이 모여 채식 뷔페를 즐기며 정보와 친교를 나눴다. 이들 중 뚱뚱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 지난달 27일 서울 서교동 음식점 토마스터에서 열린 ‘채식인의 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채식 뷔페를 즐기고 있다. 곤약 잡채, 야채 그릴 구이 등 16가지 음식이 차려졌다. 2 뷔페 음식 중 하나인
바질 페스토 냉파스타. 바질과 토마토·블랙올리브·마늘·양파가 듬뿍 들어갔다. 3 연두부 샐러드.
연두부에 양념간장을 뿌리고 새싹채소를 올려낸 간단한 요리지만, 단백질이 풍부해 채식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혼자는 외로워

행사에 참석한 회사원 이성희(31)씨는 “식성이 같은 채식인들이 모여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만큼 평소 채식인들이 겪는 마음고생이 크다는 얘기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러 가서 “고기는 안 먹는다”고 말하면 “까탈스럽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대화가 채식하는 이유로 흐르면 분위기는 더욱 나빠진다. 이씨는 “그냥 ‘건강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고 했다. 동물이 불쌍해서라거나,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면 말다툼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잔인하고 의식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채식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지만 한국채식연합이 추정하는 채식 인구는 아직 1%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채식인들은 집이나 직장에서 나 홀로 채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채식연합·한울벗채식나라·채식공감 등 채식 동호회가 요긴하게 이용된다. 한울벗채식나라는 회원 수가 5만8000여 명에 이른다. 네이버 채식 카페 ‘채식공감’ 운영자인 김윤일(40)씨는 “주변에서 채식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동호회 안에서 채식 식당 정보와 건강 관리 요령 등 채식 정보를 나누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과욕은 금물

어느 날 딱 고기를 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입과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채식주의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육류 중 쇠고기·돼지고기 등 붉은 고기류만 제외하고 닭·오리고기 등 가금류는 섭취하는 ‘세미 베지테리언(semi-vegetarian)’ ▶육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은 먹는 ‘페스코(pesco)’ ▶육식은 안 하되 우유와 계란은 먹는 ‘락토-오보-베지테리언(lacto-ovo-vegetarian)’ ▶동물성 음식 중 우유·유제품만 먹는 ‘락토(lacto)’ ▶동물성 음식을 일절 섭취하지 않는 ‘비건(vegan)’ 등의 순서로 점점 엄격해진다. 비건 중에서도 식물에 피해를 주는 잎·줄기·뿌리 부위는 먹지 않고 열매만 섭취하는 ‘푸루테리언(fruitarian)’은 어찌 보면 극단적인 단계다.

경험자들은 ‘세미 베지테리언’부터 ‘비건’까지 차례로 단계를 올려가라고 조언한다. 채식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인 박솔지(35)씨는 “붉은 고기를 안 먹기 시작하자 점점 고기를 씹는 느낌이 이상해져 해산물까지 끊게 됐고, 나중엔 계란·우유도 먹고 싶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박씨는 5년 전부터 완전 채식주의인 ‘비건’을 실천하면서 계란·유제품 없이 빵과 과자를 만드는 베이킹 연구가로 직업도 바꾸게 됐다.

저절로 건강?

흔히 채식이 건강식으로 통하지만 채식을 한다고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고기 대신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고, 헛헛한 뱃속을 탄수화물로 채우다 보면 건강을 도리어 해칠 수도 있다. 또 채식도 일종의 편식인 만큼 영양소 불균형 문제로 고생할 수도 있다. 영양 관리를 꼼꼼히 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학교 급식에서 채식과 일반식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 급식’ 제도를 시범 실시했던 광주 각화중 이경옥(43) 영양사는 “고기와 계란을 뺀 식단에서 가장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는 칼슘”이라고 말했다. 말린 토란대와 고구마줄기·무청 등 말린 채소와 들깨가루·브로콜리·다시마·현미 등이 비교적 칼슘이 많은 채식 식재료다.

채식전문식당 리빙헛티엔당 연아영(34) 대표도 “2006년생인 아들을 뱃속에서부터 채식주의자로 키우면서 영양소 부족이 안 되도록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했다. 20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고, 생후 10개월부터는 밥도 함께 먹였다는 것이다. 또 단백질 보충을 위해 콩밥과 두부를 빠뜨리지 않았다. 연 대표는 “처음엔 아이에게 채식을 시켜도 괜찮을지 걱정도 됐지만, 아이가 또래들보다 키도 크도 잔병치레도 덜한다”며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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