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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괴물로 본 ‘휴대폰의 아버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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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29면

마틴 쿠퍼는 1973년 그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휴대전화를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위키피디아]

많은 시리아 사람이 미국의 기업인·발명가인 스티브 잡스(1955~2011)의 별세를 애도했다(잡스는 미국 특허 342건의 단독·공동 발명가로 등재돼 있다). 잡스의 생부가 시리아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잡스는 지옥에 갔으니 슬퍼하지 말라”는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의 ‘호소’를 외면했다.

시대를 연 거목들 <18> 마틴 쿠퍼

지구촌 시대에도 발명에는 국적이 있다. 세계에서 56억 대(2011년 현재)가 사용되고 있는 휴대전화기의 국적에는 이탈리아·캐나다·미국·우크라이나가 등장한다. 휴대전화기가 전화기의 일종이라고 보면 우선 ‘전화기의 아버지’를 따져야 한다. 1849년 전화기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인인 안토니오 무치(1808~1889)다. 2002년 6월 11일 미국 의회 결의안은 무치가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라고 선언했다. 열흘 후인 6월 21일, 캐나다 의회가 반박에 나섰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1847~1922)이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라고 선언한 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미국인인 벨은 캐나다와도 연고가 깊다.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한 벨은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캐나다에서 살았으며 캐나다에서 사망했다.

뉴욕 맨해튼서 인류 첫 휴대폰 통화
‘휴대전화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최초로 개발한 인물은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인 마틴 쿠퍼(84)다. 모토로라의 셀룰러 개발 부장이었던 그는 1973년 4월 3일 인류 최초로 휴대전화 통화를 했다. 뉴욕 맨해튼 힐튼 부근의 거리였다. 힐튼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대중을 상대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 것이었다.

쿠퍼가 선택한 최초의 휴대전화 수화자(受話者)는 AT&T에서 역시 셀룰러 개발을 맡고 있던 조엘 엥걸이었다. “조엘인가? ‘진짜’ 휴대전화로 전화를 하고 있는 거라네.” 쿠퍼는 이때 조엘이 ‘이를 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주장한다. 정작 조엘 엥걸은 통화한 사실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꾸한다.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휴대전화는 벽돌 크기였다. 생긴 모습이 신발 같다고 해서 ‘신발 전화(shoe phone)’라는 별명도 있었다. 무게는 1㎏이나 나갔다. 당시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크기를 줄였으나 깊이 8㎝, 너비 4㎝, 높이 25㎝를 자랑하는 육중한 몸매였다. 마이크로프로세서나 집적회로(IC)가 없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 충전에 10시간이 걸렸고 통화는 20~35분밖에 할 수 없었다.

휴대전화 개발 배경에는 모토로라와 미국전신전화회사(AT&T) 사이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셀룰러 전화 기술을 처음 발견한 곳은 1947년 AT&T의 벨연구소(Bell Labs)였다. 미국 정부는 앞서가고 있던 AT&T에 전파(radio wave) 사용 라이선스를 주려고 했다. 당시 AT&T는 세계 최대의 자산을 보유한 회사였다(AT&T는 1984년 독점적 통신사업 운영체제의 해체를 명령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분할됐다).

AT&T와 모토로라는 50~60년대에 셀룰러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AT&T는 카폰(car phone) 개발에 주력했다. 카폰은 무게가 13.5㎏에 달하고 가격도 비쌌다. 통화량이 많으면 통화 시도 10번에 한 번 성공할 정도로 성능에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스타, 중역들에게 인기였다.

AT&T와 달리 마틴 쿠퍼는 통신의 미래가 카폰이 아니라 휴대전화라고 봤다. AT&T의 독주를 저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그에게 휴대전화 개발을 촉구했다. 쿠퍼는 1967년 시카고 경찰에 카폰을 납품했는데 카폰을 현장에서 사용하는 경찰관들이 쿠퍼에게 불편을 호소했다. 한편 쿠퍼에게 휴대전화 개발의 영감을 준 것은 TV 미래과학 시리즈 스타트렉(Star Trek)에 나오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였다.

휴대전화 개발 시한은 3개월이었다. 시간이 없었던 이유는 워싱턴DC에 있는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시연해 AT&T에 독점권을 주려는 FCC의 구상을 저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사흘 만에 끝냈다. 4개의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요즘 돈으로 100만 달러의 개발비가 들어갔다. 개발에 앞서 엔지니어들을 불러모은 쿠퍼는 이렇게 말했다. “기한에 맞춰 프로젝트를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방을 나가라.”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전사적인 노력으로 최초의 휴대전화 통화에 성공했으나 상용화에는 10년이 걸렸다. 10년 동안 5개 모델을 개발했다. 시장에서 실제로 팔릴 제품은 더 작고 가벼워야 했다.

쿠퍼는 ‘휴대전화의 모세’라고 불린다. 쿠퍼는 전화는 장소나 책상이나 집, 차량에 거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거는 것이라고 회사 사람들에게 역설했다. 모토로라 사람들은 모두 쿠퍼의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러나 최면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던지는 ‘돈은 언제 버느냐’는 물음에 쿠퍼는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983년 무게를 450g으로 줄인 다이나택(DynaTAC) 8000x가 4000달러에 출시됐다. 요즘 돈으로는 1만 달러다. 최초의 구매자들은 부동산업자, 의사 등 업무에 휴대전화를 활용하는 사람들이었다.

10년에 걸친 개발 과정을 통해 쿠퍼가 깨달은 것은 ‘발명에서 출시까지’라는 전 개발 과정 중에서 발명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쿠퍼는 입버릇처럼 “성공적인 발명가는 발명에서 출시까지 전 과정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AT&T와 싸우는 과정에서 이룩한 휴대전화 개발은 쿠퍼에게 ‘독점은 나쁘고 경쟁은 좋다’는 철학을 확고하게 심어줬다. “모든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회사는 없다”는 것이다. 쿠퍼는 시장에 1등, 2등뿐만 아니라 3등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등이 있어야 1, 2등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쿠퍼는 모토로라에 1954년 입사해 30여 년간 근무했다. 모토로라 입사 전에 1년간 에어컨도 없이 100명의 엔지니어를 한방에 몰아넣은 텔레타이프라는 회사에 근무했다. 부사장 자리에 올랐던 쿠퍼는 1983년 모토로라를 떠나 셀룰러비즈니스시스템스(Cellular Business Systems)라는 회사를 창립했다. 기업가로서도 쿠퍼는 능력을 발휘했다. 3년 후 신시내티 벨에 2300만 달러(현재 가치로 4700만 달러)에 매각했다. 1987년에 다이나(Dyna)를, 1992년에 어레이콤(ArrayComm)을 창립했다.

대학 학비 지원 받고 해군 4년 복무
시카고에서 자라난 쿠퍼는 자라면서 배가 고픈 적은 없었다고 한다. 부모는 행상(行商)이었다. 쿠퍼는 대학에 가기 위해 학비를 지원한 해군에서 4년간 복무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쿠퍼는 구축함에서 근무했다. 구축함의 임무는 북한의 해안 철도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쿠퍼는 자신이 휴대전화 개발 과정에서 발휘한 지도력은 해군에서 배운 것이라고 술회했다.

쿠퍼는 비저너리(visionary)다. 번호를 누르는 게 아니라 목소리로 전화를 걸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화 기능이 안경에 장착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휴대전화가 언젠가는 귀 뒤에 이식돼 체온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머릿속 생각만으로 전화를 걸고, 피부가 간질거리면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휴대전화가 사람이 아프기 전에 질병을 예방하는 의료 기능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쿠퍼는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눈이 밝다. 추세를 알기 위해 그는 두 달에 한 번씩 새로 나온 휴대전화를 구매한다. 새 제품을 분석할 때 그가 적용하는 확고한 기술관이 있다. “좋은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Good technology is invisible)”는 것이다. 쿠퍼는 좋은 기술은 직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뉴얼이 불필요할 정도로 소비자들이 제품을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쿠퍼는 스마트폰의 등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휴대전화가 ‘괴물(Monstrosity)’이 됐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500페이지짜리 매뉴얼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엔지니어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쿠퍼는 아내 아를린 해리스와 함께 아무런 다른 기능 없이 ‘전화만 걸 수 있는’ 지터버그(Jitterbug)를 개발했다. 삼성전자가 제조해 판매하는 제품이다.

쿠퍼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애초에 틀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The best way to get people to think out-of-the-box is to not create the box in the first place).”

쿠퍼에게 은퇴란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게 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매일 잠자리에 드는 게 힘든 사람이다. 언제 은퇴할 것이냐고 물으면 “인생에서 일과 성취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발명가로서 돈을 많이 벌었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만족, 행복, 자기 실현에 있어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나는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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