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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드레날린 드라이브(1999)

중앙일보

입력

이 영화 만화 같은데?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는 이런 느낌을 받을만한 영화다. 별로 이상한 것도 아니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를 만든 영화감독 야구치 시노부는 영화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 중엔 만화 스토리 작가라는 이색적인 일도 있는데 감독의 이같은 경력을 보건대, 영화에 특이하면서도 썰렁한 유머감각이 배어있는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에선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 리턴'에서 주연한 바 있는 안도 마사노부가 주연하고 있다. 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이 영화에 대해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코미디 센스가 그 진가를 발휘한 영화"라고 평했다.

영화에서 무기력하고 소심한 스즈키는 우연히 차사고를 일으킨다. 렌트카의 점장은 모든 책임을 스즈키에게 전가하고 스즈키는 엉겁결에 야쿠자 사무실까지 끌려간다. 야쿠자 사무실에서 우연한 사고가 생기자 간호사 시즈코는 스즈키와 만나게 된다. 둘은 야쿠자의 현금을 발견한 뒤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돈다발을 챙겨 도망친 두사람은 부부인 척 위장하고 야쿠자의 손길을 피해 달아난다. 한편, 돈을 잃은 야쿠자 조직에선 스즈키와 시즈코의 행방을 뒤쫒기 시작하고 호텔방에 숨어있는 두사람을 발견한다. 이때부터 야쿠자 조직원과 스즈키 일행의 숨막히는 머리싸움이 시작되기에 이른다.

원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단편영화 감독으로 출발했다. 8mm영화를 만들면서 영화 경력을 시작한 그는 피아 필름 페스티발에서 수상하면서 일본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그 뒤 '비밀의 화원' 등의 장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주로 코미디 장르를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작품을 만든 바 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국내에서 개최된 일련의 국제영화제 행사와도 관련이 깊다. '비밀의 화원',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그리고 디지털 영화인 '원피스 프로젝트' 등의 작품들이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공개된 바 있는 것이다. 직접 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했던 야구치 감독은 "나는 관객이 보고싶은 영화를 만드는 연출자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철저하게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속성을 견지하는 감독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 같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이전 영화들과 연장선상에 있다. 우연한 사건이 전개되면서, 한 여성이 자신의 근원적인 '힘'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비밀의 화원'에서 감독은 돈에 눈 먼 여성이 우연하게 은행강도를 만난 뒤 분실한 현금을 발견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과정을 코믹하게 묘사했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즈코라는 지극히 평범한 간호사가 야쿠자들이 흘린 돈가방을 발견한 뒤 완전하게 다른 여성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영화에서 시즈코는 남자친구도 없는, 다소 처량한 여성으로 초반에 등장하다가 야쿠자들 돈을 가로챈 뒤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화려한 옷을 입고, 헤어 스타일도 바꾼 뒤 적극적인 성격의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외견상으로는 가벼운 코미디 장르에서 소질을 발휘하면서 작품 속 여성 캐릭터를 정교하게 빚어내는 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아드레날린 드라이브'에 대해 "셈 페킨파 감독의 '겟어웨이'의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타란티노 등 최근 감독들 영향을 감지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는 최근 다소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일본영화계에서 익살스러운 감각으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소품이다. 아무런 극적 요소나 스펙터클없이, 이렇듯 가볍고 경쾌하기 이를데 없는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소중한 재능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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