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중계기로 매출 2백억 달성한 박춘호 위다스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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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PCS회사가 중계기를 소재로 TV 광고로 내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지하철에서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던 시절이라 중계기를 많이 설치한 자사의 PCS가 통화품질이 좋다는 게 광고의 내용이었다. 이 PCS회사는 다른 이동통신회사들과 달리 중계기를 많이 설치해 기지국 숫자를 줄이면서도 통화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중계기를 만들어 연 매출액 2백억원을 올린 인물이 있다. 위다스의 박춘호(46) 사장이 그 주인공. 위다스는 97년 9억원, 98년 38억원, 99년 60억원, 2000년 2백12억원의 매출을 올려 매년 2백%씩 급성장을 해왔다.

박사장은 법인 설립 최소 자본금인 5천만원만 달랑 들고 4명이서 96년에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만 해도 벤처개념조차도 생소했던 시절이라 외부자금은 엄두도 내질 못했다. 중계기로 위다스를 연매출 2백억원대 기업으로 키웠지만 회사 설립 초기에는 중계기 시장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박사장은 창업 전에 텔코전자에서 기술상무로 있으면서 철도청, 한전 등 관공서 위주의 무선통신망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을 했었다. 그런데 통신사업자들이 공격적으로 가입자를 늘리면서 기지국을 건설하는 것을 보고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중계기’란 틈새시장을 노렸던 것.

“굳이 성공비결을 따진다면 틈새 공략에 성공했다는 데 있겠죠. 중소기업은 스스로 시장을 개발해 나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물건이 좋다고 해서 회사가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창출 능력이 있어야죠.”

박사장이 풍기는 이미지는 성공한 벤처기업인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그는 벤처기업이라는 말을 내켜하지 않는다. 그냥 중소기업 사장으로 불리길 원한다. 그래서 벤처인증도 99년에야 받았다.

자신은 싫었지만 벤처 인증서가 무슨 자격증처럼 여겨지는 풍토를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 뒤에도 정보통신이나 텔레콤 등의 단어를 전혀 붙이지 않았다. 위다스라는 사명도 독특하다. ‘우리 함께’라는 뜻이다. 사명을 이렇게 지은 것은 ‘공동체와 분배’를 중요한 경영이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돈을 벌고 나서 그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박사장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난 88년 뼈아픈 부도를 경험했던 탓이다. 경찰용 무전기 등을 만드는 핼스전자 재직 중에 부도를 겪었다. 그런데 부도 4일 후에 아이가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스런 시기였다. “부도라는 게 얼마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가를 그 때 알았습니다. 기업이 이윤창출도 좋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절감할 수 있었던 시기였죠.”

박사장은 이 때의 경험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절대 어음을 발행하지 않고 차입금도 미미한 수준을 유지한다. 재무관리의 핵심도 현금 흐름에 두고 있다. 매출도 좋지만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회사는 부도가 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박사장은 최근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내수 위주로 시장을 개발했지만 이제는 해외로 나가 진검승부를 할 계획이다. 중국의 통신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또 미국 시장에도 진출, 이미 주문을 받아 놓은 상태다. “해외로 자꾸 나가야 합니다. 우리나라 중계기 회사들은 균형감이 없습니다. 중계기 회사는 우리나라가 가장 많고 기술력도 뛰어난데 너무 국내 시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힘을 합해 해외로 나가면 승산은 충분합니다.”

이상건 기자 sglee@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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