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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정권 빼앗아 오려면 안철수든 누구든 단일화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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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06면

3일 광주 동구 금남로 2가 충장서림에서 시민들이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기자

수은주가 섭씨 34도까지 올라간 2일 오후 광주시 서구 서부농산물도매시장. 파를 다듬는 아내와 함께 야채 매대를 지키던 박정권(59)씨에게 연말 대선에 대해 물었다. “대통령 선거? 문재인이고 김두관이고 손학규고 정치인은 다 거기서 거기여. 뉴스를 보믄 안철수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디, 정치는 안 해 봤어도 머릿속이 가장 서민적이더랑께.”

『안철수의 생각』이후 광주·부산 민심 르포

그에게 ‘민주당이나 호남 출신이 아니어도 괜찮나’라고 묻자 “노무현이도 찍었는데 안철수가 부산이란 거랑 민주당이 아닌 게 무슨 상관이여. 서민들을 생각하면 됐제”란 대답이 돌아왔다.

동구 대인시장 입구에서 옷가게를 하는 박필주(70)씨는 방송과 책을 보고 ‘안철수 팬’이 됐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김두관이도 좋게는 봐. 그래도 난 안철수가 마음에 들어요. 주식도 나눠주고 여러 사람이 협력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좋아. 노무현이도 광주가 지지해서 대통령 됐는데 안철수도 그럴 것 같아”라고 했다.

같은 시장의 한복집에서 만난 박현옥(61)씨는 “다들 어떻게든 정권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들 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은 손학규가 경기지사도 하고 했으니 준비된 사람 아니당가. 그래도 박근혜를 이기려면 안철수든 누구든 단일화해야제”라면서다.

제1야당 민주통합당의 텃밭에서 태생적 기반도, 정치적 연고도 없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제2의 노무현’이 될 수 있을까. 2002년 출신 지역을 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택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정권 재창출을 주도한 광주는 2012년 또 다른 선택을 고민 중이었다.

같은 날 동구의 대형서점 충장서림. 안철수 원장의 책을 아예 계산대에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안 원장 관련 책 10여 종을 모아놓은 독립 매대도 설치됐다. 이 서점의 문도선(39) 과장은 “8월 2일까지 안철수의 생각이 1600권 정도 나갔는데, 16년 전 서점을 연 이래 이렇게 단기간에 많이 팔린 책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론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문재인의 책 운명은 400여 권만 판매됐다. 모레쯤 문재인의 새 책(사람이 먼저다)이 나오는데 200권 주문했다”고 했다. 이어 “김두관의 책 아래에서부터는 수십 권 팔렸는데, 사람들은 대통령이 될 성 싶은 사람의 책을 더 많이 산다”고 주장했다.

광주 민심은 대기업을 비판해온 안 원장이 분식회계 혐의를 받던 최태원 SK 회장 구명활동을 한 것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듯했다. 북구의 전남대 제1학생회관에서 만난 김보영(22·신소재공학부 4학년)씨는 “사회에 환원하는 이미지가 워낙 좋으니 주변 친구들도 이해하려는 분위기”라며 “(안 원장으로선) 아는 사람이 부탁하니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요”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검증이 계속되면 흐름은 바뀔 수 있다. 정치 이슈에 워낙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어서다. 지난해 4월 분당을 선거 후엔 손학규 후보가, 안 원장이 정치 참여를 주저하던 올 1월엔 문재인 후보가 지역 민심을 사로잡았다. 김두관 후보가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올 7월 초엔 그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광주·전남 기자협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7월 31일 회원 252명에게 실시한 민주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선두는 김두관(40.1%) 후보였다. 문재인(25.0%), 손학규(19.4%), 박준영(9.5%), 정세균(3.2%) 후보가 뒤를 이었다. 범야권 대선주자 적합도로는 안 원장이 36.1%로 1위였으나 김두관(27.0%) 후보와 오차범위 내였다.

문재인·김두관 지지층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전남대 총학생회 행사 책상을 지키던 남병현(24·성악 전공)씨는 “지지 후보를 못 정했지만 주변에선 문재인씨가 괜찮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안 원장만 지지할 거라 보는 건 오해”라고 전했다. 주태석(42·출판업·서구 화정동)씨는 “김두관씨가 해남에서 출마 선언도 하고 호남에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지인들은 김두관씨를 많이 지지한다”고 했다.

새누리당도 내심 박근혜 후보에 대한 광주의 지지를 바란다. 4·11 총선 때 박 후보의 측근으로 광주 서을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가 2만8314표(39.7%)를 얻기도 했다. 실제로 금은방 주인 김모(58·여)씨는 “민주당이 (종북세력이라는) 이석기·김재연이 있는 통합진보당과 함께하는 걸 보니 박근혜를 지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고종성(75)씨는 “민주당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정현이를 찍은 거지, 박정희 시절에 호남이 홀대받았는데 광주가 박근혜를 좋아하겠나”라고 했다. 공천헌금 사건도 악재다. 주태석(42)씨는 “광주에선 (새누리당이) 본래 그런 X들인 줄 몰랐냐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광주 출신인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홍보실장은 “호남은 정권 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박근혜 후보를 이길 후보를 물색하는 상황”이라며 “분위기는 계속 바뀔수 있다”고 말했다. 역시 광주 출신인 김희갑 전 총리실 정무수석도 “광주가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노무현을 선택했듯 안철수 지지에도 그런 판단이 깔린 것”이라며 “수도권에 사는 호남 출신들 생각도 비슷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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