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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1만개 시대…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입력

벤처 1만개 시대. 중소기업청(http://www.smba.go.kr)에서 벤처기업으로 확인한 업체가 이달 초 1만개를 돌파했다. 1998년 5월 벤처확인제도를 시행한 이래 3년 만이다.

1만이라는 숫자의 의미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한국벤처의 양적.질적 변화를 반영하는 수치라고 의미를 부여하는가 하면 정책당국의 인위적 기준으로 집계한 단순 수치일 뿐이라는 평가절하도 있다. 국내 벤처기업의 빛과 그림자를 짚어보고 벤처정책의 문제점을 알아본다.

◇ 벤처의 명암="벤처 1만개는 벤처산업이 한국경제의 당당한 주류로 떠올랐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 (중소기업청 송재빈 벤처정책과장)

외환위기 이후 불기 시작한 벤처 열풍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에 대한 반성과 현정부의 적극적 벤처육성 정책이 맞물리며 한국경제의 새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벤처기업의 수출액은 45억6천만달러로 1999년보다 42%나 증가해 전체 수출증가율 19%를 훨씬 능가했다. 1백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고용인원으로 실업난 해소에도 한몫을 했다.

반면 거품 논란과 일부 벤처인들의 도덕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벤처에 대한 기대는 1년 전인 지난해 4월 17일 코스닥 시장이 11.4% 폭락한 '블랙 먼데이' 이후 급속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정현준.진승현.서갑수 등으로 이어지는 비리사건까지 겹치며 일반투자자들의 기대는 환멸로 바뀌었다. 투자심리도 급속히 위축해 벤처투자를 위한 펀드 결성금액이 지난해 4분기 4천9백억원을 웃돌았으나 올 1분기에는 1천2백23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65개나 됐던 창투사 설립도 올들어선 두개뿐이다.

◇ 정책전환 필요=전문가들은 양적 성장에 치중해온 벤처정책을 질적 성장을 위한 정책으로 바뀌야 한다고 지적한다.

벤처육성책은 필요하지만 옥석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지원과 간섭은 벤처의 자생력을 해친다는 것이다.

최근 중소기업특별위원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전문가들의 49%는 벤처정책방향에 대해 "정부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기능에 일임해야다" 고 지적했다.

정부의 지원방식에 대해서는 4분의 3이 '제도개선과 인프라 구축 등 간접 지원' 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현행 벤처확인제도에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숭실대 류동길(경제통상학부)교수는 "일정한 틀을 만들어 놓고 벤처 여부를 가리는 현행 제도부터 없애야 한다" 고 주장했다.

벤처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정책에 지나치게 기대는 바람에 벤처의 원래 의미인 모험정신을 잃는다는 것이다.

건전한 벤처시장의 발전을 위해 국민경제에 대한 벤처산업의 기여를 과대포장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동시에 현재의 벤처침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서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성소미 박사는 "벤처기업의 순기능은 거시경제적 비중이 높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있다" 며 "지난해 봄 이후 코스닥 시장의 주가폭락은 그 이전의 거품을 제거하는 과정의 하나일 뿐" 이라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lee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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