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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고 용기 장전 … ‘마지막 발 징크스’ 날린 10.8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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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메달 V 진종오가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28일 오후(현지시간) 런던 왕립포병대 올림픽사격장에서 열린 남자 공기권총 10m 결승에서 우승한 진종오가 시상대에 올라 승리의 브이를 보여주고 있다. 진종오는 다음 달 5일(한국시간) 50m 권총에서 두 번째 금메달에 도전한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여러 사람이 또 묻습니다. “당신이 사격을 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전 언제라도 그 질문에 똑같이 답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격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전 사격이 좋습니다. 금메달을 따서가 아닙니다. 총을 쏘는 게 좋고, 금메달을 따면 더 좋은 것이죠.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선수들은 누구라도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제가 금메달을 딴 것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50m 권총 금메달에 이어 런던 올림픽(10m 공기권총)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딴 저는 행운아입니다.

 예선을 마치고 김선일 코치님이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1000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생각을 버리고 용기를 채워야 했습니다. 588점으로 예선을 1위로 통과했고, 2위(팡웨이·중국)보다 2점 앞서 있었지만 저는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한 발의 실수로 누구나 이길 수 있고, 누구도 질 수 있는 게 사격이니까요. 변경수 감독님이 “결선에서 땅바닥에만 쏘지 않으면 네가 이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기가 됐습니다.

 첫 발부터 좋았습니다. 10.5점으로 시작해 다섯 발까지 모두 10점대를 기록했습니다. 2위권과 3점 차이가 났습니다. 진짜 위험한 적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이제 됐다’ 싶었는지 다음 사격부터 이상하게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네 발 연속 9점대에 그쳤습니다. 마치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내가 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이 2위 테스코니 루카(이탈리아)는 4연속 10.5점 이상을 기록하며 1.3점차까지 쫓아왔습니다.

 마지막 사격에서 내가 9점대를 쏘고 루카 선수가 10점대를 기록한다면 금·은메달이 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해도 루카의 점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부터 국제대회에서는 한 발을 쏠 때마다 장내 아나운서가 점수를 불러주기 때문입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50m 결승전이 떠올랐습니다. 본선 1위를 했지만 7번째 격발에서 6.9점을 쏘는 바람에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도 생각났습니다. 주종목인 10m 결승에서 팡웨이에게 아쉽게 졌습니다. 그 때문에 마지막에 약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빨리 마음을 다잡고 싶었습니다. 1000가지 생각을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이번엔 어떤 후회도 남기지 말자. 연말에 태어날 내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자. 아이에게 금메달이 최고의 선물이다. 집중하자’.

 사격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저도 모르게 가장 먼저 총을 올렸습니다. 편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슈욱” 소리를 내며 날아간 총알은 과녁 한가운데를 관통했습니다. 10.8점. 오늘 최고점입니다. 미리 나왔으면 편했겠지만, 맨 나중에 나와서 극적이었습니다. 이전 대회와 달리 마지막에 가장 좋은 점수가 나오며 오랜 징크스도 깨버리는 한 방이었습니다.

 기쁩니다. 후련합니다. 8월 5일 50m 경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편하게 총을 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꼭 따고 싶은 금메달을 오늘 땄으니까요.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정성껏 총을 쏠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아내를 보고 싶습니다.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전 요란하게 스트레스를 풀지 않습니다. 사격 선수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바다낚시를 가고 싶습니다. 한없이 정적인 바다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정리=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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