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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달라진 투자환경… 경기방어주는 이제 환상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1호 20면

경기방어주로 꼽히는 농심의 대표제품 신라면.

연일 유럽발 악재로 주식시장이 시끄럽다. 스페인의 전면적 구제금융 요청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단적 시나리오 정도로 여겼지만 이제는 그렇게 될 가능성도 만만찮게 커졌다. 약한 대로 긍정적 소식도 있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은행 시스템 붕괴 방지 로드맵이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춰가는 것이다. 이렇듯 악재와 호재가 뒤섞이면서 주식시장은 출렁임의 연속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변동성이 커졌을 뿐 코스피는 지루한 박스권 움직임이다. 5월 이후 1700선 후반에서 1800선 후반에 갇힌 양상이다. 종합주가지수에 투자자들의 경제 예측이 반영돼 있다고 한다면, 주가의 박스 모양새는 증시 전문가들조차 헷갈리고 있다는 뜻이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전문가들만 비난할 건 못된다. 이번 경제 위기는 수요 공급의 논리에 정치적 요인이 더해진 골치 아픈 퍼즐이기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상과 경제장관이 얼마나 구체적인 합의안을 내놓을지 무슨 수로 예상하겠는가. 시장 참여자들은 그저 다양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일이 잘 마무리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황에 라면 인기는 옛말
그런데도 증시에 돈이 몰리는 종목들이 있다. 이른바 ‘경기방어주’다. 식음료·화장품 같은 소비재가 대표적 사례다. 이런 업종은 경기 침체기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실적을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요즘처럼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경기가 나쁜데도 실적이 꾸준하다는 말, 혹은 오히려 불황기에 수익성이 낫다는 말은 투자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필자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묻고 싶다. 과연 경기방어주란 존재하는 것이냐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를 돌이켜보자. 국내엔 불황 공포가 엄습하고,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은 물건을 주로 판매하는 대형마트가 투자 피난처로 떠올랐다. 결과는 어땠을까. 세간의 예측과는 달리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오히려 실적이 좋아진 곳은 비싼 물건을 많이 다뤄 불황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 백화점이었다. 계층별 소비 행태가 변했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서민층은 지갑을 닫았지만 고소득층의 럭셔리 브랜드 소비는 줄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되살려 지난해 하반기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자 투자자들은 2008년과 정반대의 예측을 했다. 대형마트가 아닌 백화점을 경기 불황의 대안 투자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투자자들의 예상은 빗나간 듯하다. 올 상반기 국내 백화점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2008년 백화점 실적의 효자였던 고소득층도 자산 디플레가 수년간 지속되자 지갑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음식료 기업만 해도 그렇다. 국내 라면 시장의 최강자인 농심은 대표적 경기방어주로 여겨졌다. 라면은 값싸게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고 조리법도 간단해 불황기에 오히려 많이 팔린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농심의 이익과 주가를 살펴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웰빙 식생활에 대한 선호가 늘고 라면 종류도 다양해진 때문이다. 또 저가 식품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원재료 값이 올라도 그만큼 판매가를 올리지 못했다. 매출이 늘어도 수익성이 둔화돼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이는 사실 음식료 종목이 빠지기 쉬운 공통적 함정이다. 농수산물 가격은 경기보다 날씨 등의 변수에 많이 좌우된다. 즉 일반적 제조 업종과 달리 농수산물은 ‘경기 둔화=원재료 가격 하락’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립스틱 효과’라는 말을 내세워 저가 화장품이 불황기 투자의 대안이라고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듯하다. 우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는 강렬하기 때문에 불황이라도 화장품 수요가 꾸준할 것이라는 점이다. 불황일수록 성능은 비슷하면서 값이 싼 화장품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점도 그럴듯하다. 정말 그럴지 아직 예단하긴 어렵다. 앞서 든 예처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기방어주가 그 이름과 달리 우리 주식계좌에서 돈이 줄어드는 걸 방어하지 못하는지 이유를 개념적으로 정리해보자.
첫째, 소비자는 변덕스럽다. 불황은 소비자의 구매 행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호황일 때 소비자들은 값을 따지지 않고 써오던 것을 구매한다. 하지만 불황이 닥치면 값비싼 고급 제품 대신 알뜰 쇼핑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불황은 유통 구조도 바꾼다. 불황일수록 새로운 컨셉트와 저렴한 가격으로 포장한 깜짝 히트 상품이 나타나 기존의 업종 대표 상품을 위협할 가능성이 커진다.

둘째,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익을 갉아먹을 수 있다. 사실 불황이 닥칠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더 나은 실적을 거둘 수 있는 기업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기에 덜 민감한 제품을 다루는 업체도 불황을 이겨내려는 여러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다. 광고선전비나 판촉비·할인 판매가 증가하면 판매가 늘어도 마진은 박해질 수 있다.

경기방어주, 존재 않는 불로초 같은 것
중국 진시황은 영생을 얻겠다고 불로초를 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불로초란 없었다. 불로초란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경기방어주라는 것도 유행에 따라 그 종목과 개념이 변화하는 신기루 아닐까. 없는 것을 찾아 헤매다 보면 결국 나쁜 종목에 손대거나 주식거래 비용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경기방어주냐 경기민감주냐, 혹은 가치주냐 성장주냐 같은 애매한 용어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투자법이 무엇인지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투자법은 무엇일까. 기업 가치가 장기적으로 극대화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특정 기업의 장래 가치에는 무수한 변수가 있겠지만 기업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적어도 무슨 테마니 하는 것에 휘둘려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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