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수’가 국회의원보다 상해보험료 2.5배 더 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국회의원, 변호사, 의사, 기업 임원, 노조 간부, 주부, 역술인, 남성을 제외한 휴학생, 공무원, 공기업 직원, 일반 사무직 종사자, 교사….

 상해보험료를 적게 내는 직업군이다. 보험사들은 이들 직군을 위험도가 가장 낮은 A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노조 간부가 기업 임원과 같이 위험도가 가장 낮은 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역술인은 최고 대우를 받는 A등급이지만 무속인은 고위험군인 E등급에 속해 있다.

 직업에 따른 상해보험료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보험사들은 보험 원리에 따라 위험도에 따라 보험료를 책정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보험개발원이 2004년 개정한 ‘표준위험직종 분류표’는 1000여 개의 직업을 위험도에 따라 다섯 등급으로 나눈다. 분류표는 과거 보험 통계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그동안 어떤 직업에 속한 사람들이 사고를 많이 당했는지를 따져, 위험도가 높은 직업 종사자에게 상해보험료를 더 많이 받게끔 한 것이다. 생명·손해보험사 모두 이 분류표를 기준으로 상해보험료를 매긴다.

 보험업계는 직업 위험도는 보험금 지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만큼 이를 감안해 보험료를 차등하게 매기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 자체가 위험도를 계산해 보험료를 걷고,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내줘야 하는 상품인 만큼 위험도가 달라지면 보험료도 달라지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반면 직업 차별 아니냐는 불만도 있다. 고위험군인 E등급이 내는 상해보험료는 많게는 A등급의 2.5배나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돈이 없어 위험한 일을 하는데 보험료까지 이렇게 많이 내야 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위험도가 보통 소득에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A등급에는 고소득자 또는 소득이 안정적인 공무원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경험상 사고를 내 보험금을 타간 확률이 작기 때문에 상해보험료를 적게 낸다. 반대로 가장 위험도가 높은 E급엔 육체 노동자가 많이 포함된다. 빌딩 외벽 청소원, 스턴트맨, 해녀, 타일 부착원, 외벽 미장원, 원양어업 종사원, 대리운전 기사 등이다.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기자나 험한 산을 타는 전문 등반인, 19~60세 남성 무직자도 E등급이다. 정창호 보험개발원 장기손해보험팀 수석은 “정신적 스트레스나 사회적 통념으로 등급을 나눈 게 아니라 철저히 기존 보험금 지급 통계를 바탕으로 등급을 나눈 것”이라며 “무직자가 E등급에 포함된 것은 생계형 보험사기에 연관된 이들이 많아 지급 통계 수치를 올렸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단체는 등급에 따른 보험료 격차가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등급별 보험료 차이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 좀 더 서민 친화적인 측면에서 보험료가 산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일연 금융감독원 손해보험팀장은 “통계적 위험도에 기초해 보험료를 산출한 것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만 분류표가 개정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난 만큼 다시 개정할 필요가 있을지는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