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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꼬집는 드라마, 대선을 생각하는 시청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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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12 추적자 올 대선 정국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추적자’. 개혁적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고 범죄를 은폐하려는 대권주자 강동윤(김상중·오른쪽)과 그에 맞서는 소시민 아버지 백홍석(손현주)의 분투를 그렸다.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 대기업 서회장 박근형(왼쪽)은 이 드라마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사진 SBS]

우리 사회의 정의 문제를 건드렸던 드라마 ‘추적자’(SBS)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평범한 소시민(손현주)의 분노에서 출발한 이 드라마는 대선 정국을 배경으로 정치·자본 권력의 추악한 면을 그리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시청률 20%를 넘기며 고품격 정치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다. 특히 악의 상징으로 제시된 정치인 강동윤(김상중)이 대통령 선거를 통해 몰락하는 장면은 2012년 대선의 해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TV 드라마를 보면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읽을 수 있다. 예전에도 대선의 해에는 정치색 강한 드라마들이 주목을 받았다. 시대적 상황과 국민의 바람이 직·간접적으로 투영됐기 때문이다.

1997 용의 눈물 유동근·최명길 주연. 한보비리·외환위기등 사회위기와 강력한 군주에 대한 희구.

◆‘용의 눈물’부터 ‘추적자’까지=과거 대선 시즌에는 조선시대를 거울 삼아 현재의 우리를 짚어본 대하 사극이 주로 인기를 끌었다. 1997년 ‘용의 눈물’, 2002년 ‘여인천하’, 2007년 ‘이산’ 등이다. 당시 대중들이 희망했던 리더십을 구현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정치 사극’으로 불리기도 했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개국부터 태종 이방원의 정권 창출 부분을 다룬 ‘용의 눈물’이 대표적이다. 개국공신을 제거하는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는 김현철-한보 비리로 얼룩졌던 당시 정국과 맞아떨어졌다. 외환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강력한 군주를 원하던 대중에게 태종의 리더십도 어필했다.

2002 여인천하 강수연·전인화 주연.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며 여성과 정치 코드 접목.

 여인들의 권력 암투극인 ‘여인천하’는 2001년부터 2002년 여름까지 방영됐다. 드라마평론가 정덕현씨는 “세기가 바뀌면서 관심이 높아진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권익신장 코드가 드라마 인기에 한몫했다”고 평가한다. 2007년에는 ‘이산’ ‘한성별곡’ 등 정조 관련 사극이 쏟아져 나와 기득권에 의해 좌절하는 개혁군주의 모습을 그렸다.

 지난해 말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가 대표적인 정치 사극으로 꼽힌다. ‘글자는 무기’라는 신념을 가지고 기득권층과 치열하게 싸웠던 세종, 그가 내세운 소통의 리더십이 시청자를 파고들었다. 마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반적인 미디어로 자리잡기 시작한 때였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정치란 무엇인가, 소통은 무언가를 묻는 최고의 정치 사극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사극이 대선 드라마의 계보를 이어온 이유는 뭘까. 정덕현씨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이슈를 잘 담아낼 수 있는 틀이 사극이었다. 과거를 통해 현실정치를 은유적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장혁 주연. 왕의 민본 개혁과 그를 방해하는 기득권층의 저항.

 ◆판타지 사극의 부상=올해에는 사극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진 양상이다. 왕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가 세 작품 연이어 나왔다. ‘해를 품은 달’ ‘더킹 투하츠’ ‘옥탑방 왕세자’다. 모두 부드럽고 허술한 왕, 인간적 매력이 있는 왕을 주인공으로 삼아 기존 정치사극의 틀을 벗어던졌다. 드라마평론가 윤석진(충남대 국문학)교수는 “정치권력이 시민에게 넘어가는 상황에서 왕만 최고인 드라마는 이제 호소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추적자’는 권력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시장에서 국밥을 먹고, 민생을 살피는 대선 후보의 모습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졌다.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면 사람들은 잊을 겁니다” “선거는 나쁜 놈을 가려내는 거야” 등의 명대사가 큰 여운을 남겼다.

 이런 변화에 대해 정덕현씨는 “정치 사극이 ‘은유법’을 사용했다면, 현대물은 직접적으로 정치와 권력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직설법’을 쓰고 있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미씨는 “300년 전, 500년 전 권력다툼이 아니라 법적 정의, 통일 등 당대의 이슈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는 건 그만큼 대중이 정치 이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거다. 유권자(시청자)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풀이했다.

 ‘추적자’뿐 아니다. 사이버 수사대를 다룬 ‘유령’이나 의학드라마 ‘골든타임’ 같은 장르물에도 권력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정덕현씨는 “정치적 이슈들이 사극에 머무는 게 아니라 모든 분야로 나아가고 있다. 상당히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올 가을에는 태조 이성계의 삶을 다룬 사극 ‘대풍수’(SBS)가 방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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