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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와 북한의 변화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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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상수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전문연구원

김정은의 오른팔 격인 이영호 인민군총참모장이 전격 해임됐다. 이와 관련해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김정일의 여동생 남편인 장성택이 김정은의 오른팔 격인 이영호를 무력화함으로써 막후 실력자로 부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군부의 수장을 내친 것은 군부 소장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향후 권력투쟁의 장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정치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최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에서 의장 성명으로 북한의 도발행위에 반대하며 이를 중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전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이런 강경 모드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면 배급체계가 이미 망가져 식량 정치로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식량 생산량을 증가시켜 주민들을 배불리 먹이는 방법이다. 아니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끌어들여 배급체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의 농업 생산량은 이미 자급자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락했다. 가뭄과 비료 부족, 산림 황폐화로 인한 홍수 등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외부의 지원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대외정책 모드로 전환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변화의 조짐들이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첫째, 북한은 이번 이영호 총참모장이 실각하기에 앞서 개혁·개방에 대한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왔다. 모란봉악단이 미국인의 애국영화 상징인 ‘록키’ 장면과 주제곡을 방영하고, 미국 대중가요의 상징인 ‘마이웨이’를 연주한 것이다. 이렇게 외부를 향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 준 것은 미국의 주목을 끌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둘째, 선군(先軍)에서 선경(先經)으로 정책을 변화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한 예로 북한의 경제 개혁에 앞장서다 해임당한 장성택 계열의 박봉주 전 총리가 당 경공업부장으로 복귀해 경제 재건에 힘을 쏟고 있다.

 셋째, 군부의 강경 입장 견지가 대외지원을 끌어내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신군부의 실세인 이영호를 전격적으로 해임한 것은 이런 장애물을 제거한 것일 수 있다. 특히 북한의 도발행위 중단을 촉구한 ARF의장성명이라는 국제적인 압박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북한 경제는 외부 지원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체제다. 특히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이영호가 북한군을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으로부터 인도적인 경제 지원을 받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북한 실세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들을 감안하면 일부에서 전망하는 대로 북한의 전격적인 신군부 숙청이 권력투쟁의 이전투구로 번져 북한 급변사태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대남 강경 모드가 좀 더 누그러진다면 다행이다. 또 경제 분야에서 개혁과 개방을 지향해 남북이 경제적으로 더욱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한반도의 안보 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기대한다.

이상수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