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207/24/htm_2012072404457a010a011.jpg)
가톨릭 서울대교구의 허근(58) 신부. 그는 한때 술병에 갇혔었다. 알코올 중독자였다. 1980년대 초반 해병대 군종신부로 사역하며 술을 가까이 한 게 화근이었다. 술 이기는 장사 없다고, ‘술 좋아하는 화통한 신부’는 차츰 난폭한 술꾼으로 변했다. 술 때문에 미사 집전을 못하고, 신자와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다.
그가 중독에서 벗어난 건 1998년. 혼자 힘으로 술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내친 김에 99년부터 가톨릭 알코올 사목센터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체험을 녹여 중독자를 치료하는 일이다.
이달 초 그는 박사가 됐다. 임상실험 결과를 곁들인 논문이 서울기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심사를 통과했다. ‘알코올 중독자의 회복을 위한 단기통합프로그램 개발과 효과성 평가’. 한 가지 치료법보다 행동치료·음악치료 등 여러 요법을 병행하는 게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이다. 만학도, 허 신부를 19일 서울 혜화동 사제관에서 만났다.
-뒤늦게 박사가 됐다.
“신자들을 영적으로 이끄는 일은 신학교 7년 공부로 충분하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 치료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환자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고민하다 공부를 하게 됐다. 고생 많이 했다. 막판 두 달은 하루 서너 시간씩밖에 못 잤다.”
-논문 내용을 간추린다면.
“행동·인지행동·현실·음악·영적치료 등 5가지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거다. 중독자는 신체·심리·사회적인 면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피해를 당한다. 때문에 통합 치료를 해야 한다. 행동치료는 일종의 육체 훈련이다. 환자들이 유혹을 이기고 일주일에 두 차례, 센터에 나오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인지행동 치료는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술 취했다고 가정하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상상하도록 한 뒤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한다. 음악치료는 개사곡을 부르게 한다. ‘진짜 사나이’를 ‘단주(斷酒) 사나이’로 바꿔 부르는 식이다.”
-어떻게 실험했나. 효과가 있었나.
“중독자 4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세 달에 걸쳐 한 쪽만 통합치료를 했다. 세 달 뒤 추적 조사해 보니 치료를 받은 20명 중 17명이 술을 마시지 않고 있었다. 단주의 의지가 확고했고, 음주 욕구, 음주의 원인이 되는 분노도 줄어들었다.”
-의학계에서는 이런 치료를 안 하나.
“외국은 90년대부터 입원 치료와 퇴원 후 관리를 연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내가 처음이다. 병원에 입원해 약물 치료를 받는 동안은 사람들이 술을 안 마신다. 하지만 퇴원 하면 쉽게 이전으로 돌아간다. 사후 관리가 안 되서다. 이번에 효과가 확인된 통합치료를 확산시키고 싶다. 치료 전문가들을 불러 교육할 생각이다.”
-알코올 중독은 나쁜 습관인가, 질병인가.
“손상되는 뇌 부위에 따라 사고나 운동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가 있다. 우울증을 부르기도 한다. 습관으로 생각하고 끊어라, 해서는 절대로 해결 안 된다. 술을 덜 마시는 절주도 금물이다. 조금이라도 술로 인한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단주를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단주가 어렵지 않나.
“실은 그게 가장 큰 이슈다. 상사가 권할 때 거부하기 어렵다는 직장인이 가장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회식자리 가지 않아도 큰 문제 없다고 교육한다. 어차피 2, 3차 가면 누가 남았었는지 기억도 못한다.”
-가톨릭은 술에 대해 관대하지 않나.
“술을 경계하는 구절이 잠언에 특히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애매하게 상처 입고 눈이 출혈된 사람이 누구냐? 술자리를 뜰 줄 모르고 잔에 따른 술 빛깔이 아무리 고와도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쏠 것이다. 눈에는 이상한 것이 보이고 입에는 허튼 소리를 담게 된다(23장 30~33절).’”
◆허근 신부=1954년 경기도 광주 출생. 80년 사제 서품을 받고 81년 김수환 추기경 비서 신부, 82년부터 3년간 해병대 군종 신부를 지냈다. 알코올 중독 증세가 심해져 98년 병원치료를 받은 후 99년부터 가톨릭 알코올 사목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중독 경험을 고백한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톨릭출판사) 등의 저서를 냈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 경기도 화정동 성당 허영민 주임 신부와 함께 ‘3형제 신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