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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JK "힙합 동요를 만들까도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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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힙합의 랩은 현실을 읊는다. 그래서 솔직하고, 거침없고, 듣는 이의 공감을 얻어낸다. 국내 힙합 뮤지션이자 부부인 타이거 JK(38·본명 서정권)와 윤미래(31)의 얘기는 마치 그런 랩 같았다. 연예인 부부라지만 육아의 고단함, 집 장만의 꿈, 음악에 대한 고민 등 그들의 현재가 대화에 녹아들었다. 그래서 윤씨가 ‘세계 최고의 신예 여성 래퍼 12인’(MTV 음악 웹사이트)에 뽑혔다거나 JK가 ‘주목할 만한 세계 10대 아티스트’(미국 음악잡지 ‘롤링 아웃’)로 선정됐다는 ‘띄우기용 대화’는 오히려 불필요했다. 처음엔 별로 할 말 없다던 그들 역시 어느새 리듬을 타듯 대화를 이어갔다. 음악 동지로, 친구같은 부부로 살아가는 그들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아들 조던 키우느라 정신없는 부부

 만나자마자 ‘정신이 없다’ ‘피곤하다’는 말이 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바로 네 살 된 아들 조던 때문이란다. 둘은 2008년 결혼 사실과 아들의 출산을 뒤늦게 고백했다. “조던이 아침 8시에나 잠이 들어요. 아빠·엄마가 늦게 들어오니 자기도 졸음을 참고 같이 놀려고 하죠.” 밤새 잠을 못 자 ‘멘붕 상태’라는 윤씨 대신 JK가 많은 말을 했다.

●음악에 몰두할 시간이 줄었겠다.

타이거 JK와 윤미래 부부의 아들 조던.

 “(윤) 다들 왜 이렇게 앨범이 안 나오느냐고 그런다. 누구는 음악에 심취해서 그러느냐고도 하고. 사실 애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다. 조던은 밤에 잠을 안 잔다. 낮에 수영도 시키고 놀이터도 가는데 안 통한다. 새벽에도 찬물로 세수해 가면서 엄마와 놀고 싶어 한다.”

 JK도 할 말이 많았다. “예전엔 음악 작업을 할 때 거의 집에 없었다. 작업실에서 친구들이랑 아예 자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작업실 가자마자 장모님이 전화해서 ‘우유 떨어졌다’고 하면 신경이 쓰이니까 빨리 끝내려 한다. 미래는 나보다 더 모성애가 있으니까 집에 다시 들어가고.”

●따로 봐주시는 분이 없나.

 “(JK) 장모님이 같이 사신다. 근데 애가 워낙 또래보다 커서 2시간 정도 봐주시면 쓰러지는 수준이다.”(웃음)

●그래도 활동은 꾸준한 편인데.

 “(JK) 스케줄이 머리에 없다. 매니저가 일주일 전 알려주면 ‘뭐지?’ 하고 생각나는 정도다. 정말 정신없이 산다.”

●아이를 키우며 음악이 바뀌진 않나.

 “(JK) 조던 낳고 말투도, 행동도, 음악도 달라졌다. 뽀로로나 파워레인저를 보면 그게 음악으로 나오는 거다. 조던이랑 수영하고 놀다가 작업실 가서 ‘저항’, 이런 거 잘 못한다. 가사도 자꾸 조던 말투처럼 나오고, 하하. 그래서 힙합 동요를 만들까도 생각했다.” 듣고 있던 윤씨는 고개를 저었다. “난 바뀔 줄 알았는데 음악은 그대로다. 냉정해서 그런가.”

●가요계에선 둘 사이에서 나온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큰데.

 “(윤) 조던은 음악을 좋아하고 끼도 보이지만 음악을 하진 않겠단다. 음악 때문에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나중에 애가 하겠다면 막진 않겠지만 이쪽 일은 너무 힘들다. 그냥 의사 했음 좋겠다.”(웃음)

 흔히 ‘연예인 부부=빌딩 부자’를 떠올리지만 둘은 거리가 멀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산 지 벌써 5년째. ‘집을 사고 싶다’던 꿈도 아직 이루지 못했다. JK는 “남들은 우리가 벤틀리 타고 의정부에 별장 짓고 사는 줄 아는데 우린 그냥 속세 떠난 스님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돈을 못 번 건 힙합이란 장르의 한계인가.

 “(JK) 음악에 빠져서 무지했다. 애들처럼 15만원짜리 오락기 사서 놀고. 공연하면 얼마 받고 저작권에 이름도 안 올린 게 여러 개다. 조던이 생기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행사를 많이 못 뛴다.”

●왜 그런가.

 “(JK) 너무 혼자 많이 하면 다른 힙합 뮤지션들의 기회를 뺏는 것도 같고. 사실 무대에 올라 음향이나 조명 같은 것들이 완벽하지 않으면 성에 안 차 힘들다.” 듣고 있던 윤씨는 “난 통장으로 많이 들어오면 행복하게 (행사)한다. 둘째 계획도 돈을 벌고 생각해 볼 문제다. 분유값, 기저귀값이 워낙 비싸니까.”(웃음)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먼저 러브콜

 화제를 음악으로 돌렸다. 현재 부부는 꽤 ‘글로벌한’ 뮤지션이다. 아이돌 그룹이 주도하는 ‘한류’와는 다른 방식이다. 해외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품앗이처럼 서로 음악활동을 돕는 작업을 한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가수들이 피처링을 부탁해 오는 일도 종종 있다. 최근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미국의 4인조 힙합그룹 ‘파 이스트 무브먼트’의 새 앨범 타이틀곡에 리믹스 피처링을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 달 11일에는 ‘월드 일렉트로니카 카니발’ 행사에서 함께 합동공연도 펼친다.

●그들과는 어떤 인연인가.

 “(JK) 그들 중에 재미동포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미래 노래를 듣고 자랐단다. 해외공연에서 만나고 서로 알고 지내다가 자기네 앨범 내는데 피처링해 주면 좋겠다고 부탁하더라. 미국은 싱글앨범을 낸 곡으로 여러 아티스트와 리믹스를 하는 게 보통인데 미래도 그중 한 명이 된 거다.”

●이후 미국 데뷔에 대한 얘기도 나왔는데.

 “(윤) 옛날에는 해외로 나가려면 거기까지 가서 인터뷰도 하고 방송도 해야 했는데 이젠 인터넷이 발달해 그럴 필요가 없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관심을 가져주면 고마운데 그쪽 시장에 굳이 맞춰서 하고 싶진 않다. 좋은 음악 만들면 알아주지 않을까.”

●해외에서 열 손가락에 꼽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윤) 뿌듯하긴 한데 부담도 된다. 여성 래퍼가 많은데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점도 그렇고.”

●가요계에선 이미 한류 바람이 거센데.

 “(JK)확실히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상상도 못했던 아티스트들이 아이돌을 알고 있더라. 덕분에 우리도 덕을 본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 갔더니 우리 팬클럽까지 있더라. 거기서 가능성을 봤다. 한류라는 게 아이돌 음악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구나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문화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 미성년 가수들의 성적 노출 등이 문제가 되면 한순간에 외면당할 수 있다.”

부부가 함께하는 프로젝트 앨범 준비 중

 둘은 서로 챙겨주고 아껴주고 치켜세우는 ‘아침프로형 잉꼬 부부’는 아니었다. 말 하나로 꼬투리를 잡고 티격태격하다 다시 웃다 어느새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도 JK는 윤씨가 한마디만 하면 알아서 얘기를 이어가고, 윤씨는 JK가 엉뚱한 답을 하면 면박을 주면서 대신 답했다. 그들의 표현처럼 ‘베스트 프렌드’라는 말이 꼭 맞았다.

●부부가 음악을 한다는 게 뭐가 좋나.

 “(윤) 만날 때부터 음악을 같이해서 딱히 결혼해서 더 낫다고 할 게 없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음악도 비슷했고.” JK는 ‘이해’라고 답했다. “음악하는 아내가 아니었다면 한밤에 작업실 가서 녹음하는 이유를 어찌 알겠나.”

●서로 경쟁심은 들지 않나.

 “(JK) 미래는 타고난 뮤지션이다. 나처럼 노력하는 사람이 보면 얄미울 때가 있다. 지금껏 앨범들도 녹음을 두 번 이상 한 적이 없다. 녹음할 때도 20분이면 끝내고 간다. 나는 미래의 매니저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웃음)

●부부가 함께 앨범을 낼 계획은.

 “(JK) 우리 둘이랑 비지라는 친구랑 셋이 프로젝트성 그룹을 만들어 앨범을 내려 한다. 지금 각자 솔로앨범을 준비하면서 이것도 함께 작업 중이다. 다음 달 중순쯤 앨범이 나올 텐데 뭐부터 나올지는 모르겠다.”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뇌 구조를 그려봤다. 힙합과 공연, 아이 키우기와 재테크가 키워드로 채워졌다. 뭔가 안 어울리는 조합. 그들은 마흔이 넘어서도 힙합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 “듣는 분들이 받아준다면 언제까지라도 하고 싶다”는 윤씨의 말을 JK가 받았다. “대중적인 활동은 힘들겠지만 예전 선배들도 아직 공연을 한다. 제이지·스눕독·에미넴 등 나이와 상관없이 젊게 살면서 말이다. 하지만 랩은 솔직히 자신 없다. 스포츠 같은 거라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 몸은 아직 짐승돌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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