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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의원 “죽은 사람 배 갈라 장기 살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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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19세기 조선통신사와 일본 전문가의 필담집을 보면 조선은 선진 문물을 가르치고 일본은 배우는 모습이다. 실제로 일본은 적극적으로 기록을 남긴 반면 조선통신사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게 없다”며 필담집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예컨대 1764년 일본에서 출판된 필담집에는 인체 해부를 둘러싼 논란이 나온다. 일본 의원 기타야마 쇼우가 조선 의원 남두민에게 인체해부에 대해 물었다. 쇼우는 “우리나라 어떤 의원이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의 배치 등을 자세히 살피고 책도 지었다”고 했다. 그러자 남두민은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라”며 상대를 타박했다.

 그러나 19세기에 가까워지면서 조선통신사를 대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태도가 조금씩 변한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조선통신사를 은근히 비하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조선통신사를 선진 문물의 통로로 여기던 일본인들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18세기 중반 일본 시인 다카노 이케이는 자신이 기록한 조선통신사와의 필담집 서문에 이런 글을 적었다. “조선 의원이 비록 여러 책을 널리 읽어 외운다고 해도 송대(宋代) 이후만 좇아 이 세상에 맞설 것이 없다고 일컬으니, 어찌 논의할 수 있겠는가.” 서양의 선진 의술을 접하기 시작한 일본 지식인들이 조선 전통 의술의 효과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경남대 김형태(국문과) 교수는 “후기 필담집으로 갈수록 일본 지식인들이 조선 문물에 대한 존경심 대신 일본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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