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모던록' 델리스파이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화이트 스튜디오. 늦은 추위가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하게 했지만 3월 오후의 햇살은 역시 변명의 여지없는 봄의 그것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델리 스파이스는 가장 구석의 큰 방에서 오랜만의 연습에 막 나선 참이었다. "어젯밤엔 정말 꿈까지 꿨어요. 연습하다가 인터뷰하는 꿈이요, 하하." 덮수룩하던 구레나룻을 깨끗이 깎아버린 멤버 윤준호의 말이다.

베이스 겸 보컬 윤준호(31), 기타 겸 보컬 김민규(30), 드럼 최재혁(25)등 세 명으로 구성된 모던록 밴드 델리 스파이스. 스스로 '겨울잠'이라고 표현한 지난 여름 이후의 잠정적인 활동 중단을 끝내고 여름에 내놓을 4집을 준비하기 시작한 이들은 뭔가 희망에 차있었다.

델리 스파이스가 결성된 것은 1995년. "광고 음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문득 밴드를 만들고 싶어 PC통신에 멤버를 구한다는 공고를 냈지요. 딱 한 명 왔어요."(김민규)

그 한 명이 바로 외국어대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며 교내 밴드 아웃사이더에서 활동하던 윤준호였고, 이어 윤준호의 학교 후배 최재혁이 합류했다.

첫 앨범은 97년 발표했다. '가면' '차우차우' 등이 인기를 끌었고, 99년 2집에서 '종이비행기' 등이, 지난해 3집에선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등이 주목을 받았다.

델리 스파이스는 자생적으로 결성한 인디 밴드지만 주류 음악계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1세대 인디 밴드 중에서도 색다른 위치에 있다.

음악적으로도 하드록 혹은 펑크록을 주로 한 대부분의 초기 인디 밴드와 달리 조용하고 서정적인 모던록을 주무기로 삼아 독특한 색깔을 고수해왔다.

지난해 박기영 감독의 영화 '하면 된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스틸 폴스 더 레인'이 사용됐으며, 들국화 헌정 앨범에는 '내가 찾는 아이'로 참여했다.

사색적이고 생동감있는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듣는 이를 한없이 편하게 하는 밴드 델리 스파이스가 어떤 길을 걷느냐는 한국 인디 밴드의 주류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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